SAGA Universe
Avengers - Legacy of Legend

제9부 Iron Man: Extremis
Episode 5. Loss (6)
페퍼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그곳에서 검은 상복을 입은 한 여자와 장례식 예절 같은 건 잘 모르겠고, 평상시 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다니겠다는 한 여자가 서서 아이언맨의 연인의 장례식을 지켜보고 있었다.
검은 베일로 붉은 머리카락을 가린 채 페퍼의 장례식을 바라보고 있는 여자는 장례식에 직접 참석한 사람처럼 경건하게 페퍼의 관이 땅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그녀를 뒤에서 지켜보던 단발머리에 붉은 눈동자를 가진 여자는 장례식엔 관심도 없다는 듯 나무에 기댄 채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검은 상복을 갖춰 입은 붉은 머리카락의 여자와 달리, 단발머리의 여인은 와이셔츠와 붉은 넥타이, 그리고 검은색 재킷을 입고, 검은 미니스커트로 늘씬한 다리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가장 마지막까지 장례식장에 있던 토니 스타크마저 자리를 뜨자, 검은 상복의 여자는 그제야 장례절차를 다 마쳤다는 듯 망부석처럼 서 있던 자리에서 물러났다.
검은 상복의 여자가 걸음을 옮기자, 단발머리의 여자는 지루했다는 듯 그녀에게 말했다.
“카린 양, 왜 여기에 오자고 한 거예요? 이 세계의 저들은 당신과 관련이 없어요.”
“나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그거 미련이라니까.”
“그러니까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멋대로 따라오겠다고 한 사람은 당신이었어요, 주시영 씨.”
카린이라고 불린 검은 상복의 여자는 단발머리의 여자, 주시영에게 핀잔을 줬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사이에 토니가 탄 자동차가 장례식장을 떠났다. 토니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주시영이 카린에게 물었다.
“완전히 재기 불능일 거 같은데……. 사랑하는 여인을 잃었으니 다시는 슈퍼 히어로 노릇을 못하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저 사람은 강하니까.”
“강하다구요? 어벤져스 멤버 중에서 최악의 멘탈을 가진 게 토니 스타크 아니었어요?”
시영의 말에 카린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저 사람은 저대로 쓰러질 사람이 아니에요. 반드시…… 어떤 충격이라도 딛고 일어설 사람이에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에 찬 말을 할 수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시영은 질문을 하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은 그런 걸 물어보는 게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제 출발하기로 하죠. 이쪽 세계의 기술력이 생각 외로 발전하지 않아서 우리가 원하는 걸 만들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할 거 같아요. 도움을 줄만한 사람을 물색해놨습니다.”
“우리를 도와주겠다는 사람이 있어요?”
시영은 먼저 언덕을 내려가면서 카린에게 뭔갈 내밀었다. 카린이 그걸 받아봤는데 ‘해머 어드밴스드 웨폰스 시스템즈’라는 로고가 적혀있는 명함이었다. 명함의 주인은 ‘저스틴 해머’라는 자였다.
“이 인간은 이 세계에도 존재하고 있었어요?”
“우리 세계에서 보인 행보랑 비슷한 짓거리를 해대고 있더라구요. 원하는 걸 들어주면 뭐든 해줄 기세니까 잘 이용해보죠.”
시영의 사악한 미소에 카린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넥스트 피트라고 명명된 서울 시내의 작은 공간.
말이 작은 공간이고, 다크 케이브에 비해 소규모라고 불릴 수 있겠지만, 어지간한 대학교 강의실 2개는 붙여놓을 정도로 커다란 곳이었다.
다크 케이브가 다크윙을 위한 공간이라면, 넥스트 피트는 오로지 가면라이더 넥스트만을 위한 공간이었다. 넥스트가 사용하는 모든 장비를 포함, 넥스트 슈트 자체까지 수리 및 개량이 가능한 이 곳은 항상 엄격한 통제 보완이 이뤄지는 곳이었다.
물론, 최근 카케루에게 넥스트 드라이버를 건네주기 불렀을 때라든가, 이 공간의 실질적인 소유주인 다크윙이 살라딘들을 불렀을 때는 엄격한 통제 보완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오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오늘은 그때처럼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진 않았다. 카면라이더 넥스트의 주 장착자인 카자마 카케루 혼자만 이곳을 방문, 엉망이 된 넥스트 드라이버와 데드히트 키를 아이린에게 내밀며 연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건 미안하게 됐어.”
이곳저곳이 부서진 넥스트 드라이버를 보던 아이린은 짧게 한숨을 쉬더니 하얗고 긴 손가락을 움직여 데드히트 키를 집어들었다. 많이 파손된 넥스트 드라이버와 달리, 데드히트 키는 군데군데 그을음만 묻어있을 뿐 크게 파손되진 않은 듯 했다.
“아무래도 이걸 당신에게 넘긴 건 빠른 듯 했네. 좀 더 제대로 조정해서 넘겨줘야했어.”
아이린이 귀신과도 같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한 카케루는 그녀가 생각 외로 덤덤히 반응하자 오히려 놀란 눈치였다. 카케루가 생각한 아이린의 반응은 ‘이 무능력한 인간아! 네가 미숙해서 이렇게 만든거야’, ‘소중한 넥스트 드라이버를 망가뜨린 널 죽여버리겠다’ 등이었는데, 그녀의 반응은 평온 그 자체였다.
이제까지 넥스트를 막 사용했을 때마다 딴지를 걸고, 좀 더 소중히 해라는 말을 하던 사람이 보일만한 반응이 아니었다. 오히려 오답을 발견하곤 이를 수정하고 다시 풀어낼 좋은 기회를 발견했다는 표정이었달까?
“어라? 화 안 내는 거야?”
“화? 내가 왜?”
아이린이 왜 자신이 화를 내냐고 묻자, 카케루는 뺨을 긁적이면서 말했다.
“당신의 소중한 가면라이더를 망가뜨렸잖아.”
“망가뜨렸지. 그런데 왜 그게 내가 당신에게 화를 내는 걸로 귀결되는 거지?”
“에, 그게……. 소중한 걸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니까.”
그제야 아이린은 카케루가 잔뜩 쫄아있었던 이유를 알았는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 모습은 마치 ‘내 그릇이 이것밖에 안되는 줄 알았어’라고 질책하는 목소리와 같았다.
“이봐, 내가 아무리 메카닉이나 장비를 소중하게 여긴다고 해도 그걸 사용하는 사람보다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설마 나를, 자기가 만든 건담끼리 싸웠다고 ‘아악, 내 건담이!’라고 소리친 이상한 여자랑 같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어라? 당신 건덕후였어? 최애 캐릭터와 최애 건담은?”
“모든 건담은 소중하고 주인공들은 항상 고뇌에 차 있으면서 희망을 안고 살아가지. 그걸 아이돌 고르듯 고르는 취미 같은 건 없어.”
“‘윙 건담이나 스트라이크 건담 좋아해요.’라는 대답을 기대한 내가 바보였군.”
모처럼의 대화로 둘의 공통 취미를 찾아냈지만,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있던 크림은 서둘러 다음 대화를 이어나갔으면 했었다. 그래서 크림은 건담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던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둘의 훌륭한 취향 나눔은 존중하지만 일단 일에 집중하는 게 어떨까?]
“그래야지. 그럼 카자마 씨, 당분간 넥스트 드라이버는 사용할 수 없어.”
아이린은 넥스트 드라이버를 살펴보더니 그걸 데스크 위에 올려놓았다.
“데드히트가 이 정도로 드라이버에 부담을 줄 거라곤 생각 못했거든. 내부 보강을 하고, 데드히트에 대한 재조정을 하려면 한 달 정도는 걸릴 거 같네.”
“맡긴 물건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망가뜨렸으니 무슨 할 말이 있겠어? 깨끗한 수리 부탁드리겠습니다.”
한 달 동안은 가면라이더의 힘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였지만 카케루는 큰 불만없이 받아들이기로 했다. 넥스트의 힘이 아쉽긴 했지만, 데드히트를 사용하면 위험하다는 아이린의 경고를 무시한 건 자신이었기 때문에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다고 또 다른 가면라이더를 내놓으라는 말을 하기엔 넥스트 피트의 전 기능과 아이린은 넥스트의 수리와 개량에 전력을 다하고 있어 말 꺼내기조차 민망한 상황이었다.
넥스트는 한 달 동안 사용 금지라는 결과를 카케루가 별 변명이나 이의없이 받아들이고 있을 때, 크림이 또 한 번 끼어들었다.
[그 전에 카케루에게 부탁이 있다.]
“뭔데?”
[네가 가지고 있는 넥스트 드라이버 시동키를 놓고 갔으면 한다.]
가면라이더 넥스트를 기동하는데 사용되는 시동키를 두고 가라는 말에 카케루를 고개를 저었다. 카케루에게 있어 시동키는 넥스트를 사용하게 해주는 물건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어머니가 남긴 유품이었기 때문이었다.
“안 돼, 이건. 엄마가 남긴 유일한 유품이라고. 항상 몸에서 떼어 놓지 말고 소중히 지키라고 했단 말이야.”
“그래도 빌려줬으면 해. 데이터를 살펴보니까 시동키와 데드히트의 조화가 맞아 떨어지지 않은 점이 많이 발견됐거든. 시동키와의 반응을 살펴보면서 드라이버를 재조정하려고 하는 거니까 양해 부탁할게.”
아이린까지 나서 부탁하자, 카케루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시동키는 누구에게도 내줄 수 없는 소중한 물건이었지만, 넥스트의 강화, 그리고 아이린이 저렇게까지 저자세로 부탁을 하는데 매정하게 내칠 수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카케루는 주머니에서 시동키를 꺼내 아이린에게 건네줬다.
“알겠어. 꼭 이대로 돌려줘야해.”
“물론이지.”
카케루는 넥스트 드라이버에 데드히트, 시동키까지 모두 넥스트 피트와 아이린, 크림에게 맡겼다. 카케루에게서 시동키까지 받아낸 아이린은 크림의 홀로그램을 향해 돌아보며 물었다.
“그럼, 크림. 작업은 언제부터 시작할까?”
[내일부터 데드히트의 재조정 작업을 시작하도록 하지.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해, 아이린.]
“뭐? 무슨 소리야! 오늘부터 철야작업을 시작해야지! 카자마 씨가 큰 마음을 먹고 시동키를 빌려준 거잖아! 나름대로 성과를 내야지!”
[하지만 네가 지금 며칠째 철야를 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는 거냐, 아이린?]
“자, 그럼 바로 철야를…….”
‘시작하자’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그 순간 아이린의 그리 크지 않은 몸이 누군가에 의해 들어 올려졌다. 160cm에 아슬아슬하게 닿지 못하고 상당히 마른 편에 속했지만, 그래도 성인 여성인 아이린을 번쩍 든 사람은 다름 아닌 카케루였다.
“뭐야, 카자마! 당신 뭐하는 거야!”
“모처럼 크림 씨가 신경을 써주는 거잖아? 오늘은 편하게 쉬고, 내일부터 열심히 일하자고.”
“내려놓으라고! 난 일해야 해!”
“건덕후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으니까, 오늘은 마음껏 건담 이야기를 하자고.”
“야! 안된다고!”
카케루는 크림의 홀로그램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이고는 그대로 아이린을 들고 넥스트 피트 밖으로 나갔다. 카케루와 아이린 두 사람이 피트 밖으로 나가는 것을 무심히 지켜보던 크림의 홀로그램은 카케루가 두고 간 시동키를 보더니 뜬금없이 중얼거렸다.
[드디어 손에 넣었군. 카자마 유카리, 네 퍼즐이 풀릴 날이 이제 멀지 않았다.]
페퍼의 장례식이 끝난 뒤, 토니는 어벤져스 타워로 향했다.
말리부 저택은 산산조각이 난 상태로 돌아갈 곳이 어벤져스 타워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스타크 인더스트리고, 말리부 저택의 복구고 간에 전부 귀찮았던 토니는 어벤져스 타워 최상층에 마련된 자신의 작업실에 며칠이고 틀어박혀 있었다.
오늘이 며칠이 됐을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떤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작업실에 홀로 틀어박혀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샤론이 몇 번 찾아왔고, 로디가 몇 번씩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어떤 말도 토니를 위로할 수 없었다. 가슴에 커다랗게 뚫려버린 구멍, 무엇으로고 그 구멍은 채울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무력감.
아이언맨이었음에도, 슈퍼 히어로였음에도 토니는 페퍼의 죽음을 막을 수 없었다.
아이언맨 슈트가 없는 토니는 무력했다.
어둠이 짙게 깔린 토니의 작업실은 그의 가슴에 있는 아크리액터만이 유일한 빛을 내고 있었다. 자신의 가슴을 물끄러미 내려다본 토니는 작업실을 비추고 있는 또 다른 빛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그곳에는 페퍼가 만들어준 토니의 구형 아크리액터 장식장이 있었다.
‘토니 스타크에게 따뜻한 심장이 있었다는 증거’
토니는 아크리액터 주위에 새겨진 문구를 다시 읽고는 눈을 감았다. 따뜻한 심장이라, 더 이상 그것이 자신에게 남아있을까? 페퍼 포츠가 죽었을 때, 토니 스타크도 함께 죽었다. 이제 남아있는 건……
“나는…….”
눈을 뜬 토니는 작업실 컴퓨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곤 간단한 손동작으로 자비스를 포함한 작업실의 모든 장비를 켰다.
[어서 오십시오, 주인님.]
늘 한결같은 목소리로 자비스는 토니를 맞았다. 토니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일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말씀 드리지만 포츠 양의 일은……]
“조용히 해, 자비스.”
토니는 주머니에서 USB를 꺼내더니 키보드 위 포트에 꽂았다. USB에 새겨진 정보가 모두 자비스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토니가 보고 있는 모니터에 USB에 내장된 자료들이 3개의 폴더로 나눠 떠올랐다.
토니는 그걸 홀로그램으로 변환해 작업실 전체 공간에 띄우도록 했다.
가장 먼저 프로젝트가 토니가 걸어놓은 암호가 풀리면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수십대의 아이언맨 슈트로 적을 일제히 공격하는 하우스파티 프로토콜이었다.
두 번째 프로젝트도 암호가 풀렸다. 그건 이고르 슈트를 기반으로 한 대헐크용 아이언맨 슈트의 설계도였다. 설계도의 파일명에는 토니 스타크 외에 브루스 배너의 이름도 함께 있었다.
마지막 프로젝트도 암호가 풀려 모습을 드러냈다. 그건 마야 한센이 죽기 전에 토니에게 보낸 익스트리미스에 대한 데이터였다.
하우스파티 프로토콜, 대헐크용 아이언맨 슈트, 그리고 익스트리미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얻게 된 데이터들을 살펴보던 토니는 자비스에게 명령을 내렸다.
“새 프로젝트 파일을 열어, 자비스.”
[비밀 프로젝트입니까?]
“그래. 쉴드에게도, 어벤져스에게도 이건 전부 비밀로 해.”
[알겠습니다.]
하우스파티 프로토콜, 대헐크용 아이언맨 슈트, 익스트리미스의 데이터를 보면서 토니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내 집이나 장난감들을 모두 뺏어갈 수 있어도 단 하나만은 못 뺏어.”
조용히 눈을 뜬 그는 가장 먼저 익스트리미스의 데이터를 작업실 중간으로 보내 전개시켰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가 활성화되면서 익스트리미스의 모든 데이터가 토니 스타크에게 아로새겨졌다. 익스트리미스의 특징, 장점과 단점, 그리고 개선책까지 모든 가능성이 토니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나는 아이언맨이다.”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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