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GA Universe
Avengers - Legacy of Legend

제7부 Defenders: Dark Resurrection
제5편 대가 (3)
회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살라딘은 아미타유스를 소멸시킨 다음, 천둥의 대검 스톰블링거를 소환했다. 아까 아퀴루핌을 때리느라 바닥에 던져버린 히랄하르로데가 아닌 이상 뫼비우스와의 싸움이 매우 힘들 거라는 판단에서 그가 가진 가장 강력한 검을 소환한 것이다. 천둥의 대검을 손에 든 살라딘을 보며 뫼비우스는 감탄했다는 듯 손을 들어 박수를 쳤다.
“그건 클라우제비츠가 즐겨 사용한 대검이 아닌가? 겐죠라는 녀석에게 빌려준 건데, 그걸 그렇게 잃어버리다니……. 아깝군.”
“세라자드는 어디에 있는 거냐!”
“네가 알아서 무엇하게?”
후드로 얼굴의 반이 가려져서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드러난 입가에 잔뜩 비웃음이 걸려있는 걸 봐선, 뫼비우스는 살라딘을 제대로 비웃고 있는 듯 했다.
“네 놈들이 무슨 짓을 꾸미는 진 모르겠지만, 반드시 막겠다!”
“말은 잘하는 구나. 하지만 방랑자로 전락한 네 놈은 하찮은 존재일 뿐.”
로브 안에 숨겨져있던 뫼비우스의 팔이 바깥으로 드러났다. 검은 손목장갑을 끼고 있는 그의 손에는 냉혹한 한기를 뿜어내는 검이 들려있었다. 아까 아퀴루핌과 살라딘 사이에 던진 흑색 대검이 아닌 또 다른 검을 꺼내든 것이다. 뫼비우스가 손에 든 검에서 끔찍할 정도의 한기가 몰아쳤고 그 한기는 오제의 무덤이 있던 지하공간 전체를 휘감을 정도로 강력했다.
“크악! 이거 진짜 최악인데!”
강철의 남자라는 이명에 어울리지 않게 클로드는 뫼비우스가 뿜어내는 한기에 밀려 주춤거렸다. 어지간한 추위, 더위 모두 면역인 클로드였지만, 뫼비우스의 검에서 나온 한기는 짜증날 정도로 추웠다.
지하공간을 가득 메운 한기가 어느 순간 사라졌는데, 놀란 클로드가 보니 뫼비우스가 검을 앞으로 내미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한기가 사라졌다는 건 그리 좋은 징조가 아니었고, 한기의 중심에 있던 뫼비우스의 검이 앞으로 내밀어지는 것을 본 클로드는 살라딘에게 달려가며 소리쳤다.
“위험해!”
[냉혹한 겨울]
뫼비우스의 검에서 매서운 서리폭풍과 같은 검기가 뻗어 나왔다. 추운 겨울 불어닥치는 칼바람을 팔살기화 시키면 저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매서운 검기였다. 그 매서운 검기가 향한 곳은 살라딘이었고, 살라딘은 천둥의 대검으로 이를 막으려고 했지만 한기에 당한 그의 팔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크윽!”
뫼비우스의 서리 칼날이 살라딘에게 작렬하려는 순간,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그는 초스피드와 강철의 몸을 가진 클로드가 아니라, 얀 지슈카와 아퀴루핌에서 혼란을 겪던 한 불쌍한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살라딘을 밀어내고 대신 뫼비우스의 칼날을 온 몸을 받아냈다.
“얀!”
경악으로 물든 살라딘의 얼굴을 보며, 아퀴루핌, 아니 얀 지슈카는 그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똑똑히 기억해뒀다. 기억 깊숙한 곳에 살라딘의 얼굴을 기억해둔 얀의 시선은 그의 아름다운 금발로 향했다.
얼마만일까? 이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보는 것은…….
처음 그녀가 필립 팬드래건이라는 꼬마를 보았을 때, 꼬마가 가진 머리카락을 보고 얼마나 놀랐고 얼마나 신기하게 생각했던가? 마치 정말 황금처럼, 아니 진짜 황금보다도 더욱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빛으로 빛나던 머리카락.
카디스 요새의 음울한 감옥 안에서도, 필립이 서 있던 곳만은 금방 알아볼 수 있게 만들었던 이 머리카락.
투르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자신을 감췄을 때 그는 아름다운 금발을 시커멓게 물들이고 자신을 숨겨왔었다. 어린 나이에 복수를 외치던 그와, 이제 와서 다시 살라딘이란 모습으로 만난 그는 너무나도 다르면서 너무나도 같았다.
어린 필립은 조용한 소년이었다. 조용하고, 언제나 시키는 대로 얌전히 일을 하는 소년이라고 간수들은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저런 것이 팬드래건의 왕족이라고 비웃었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 반쯤 재미삼아 검을 던져 주었을 때, 놀랄 정도로 변화했던 그 눈빛을 얀은 잊지 못했다. 어떻게 저 어린 것이 그런 눈빛을 가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처절하게 독이 서려있던 그 눈빛…….
그녀는 그 순간 겁이 났던 것일지도 몰랐다. 어쩌면 전사로서의, 동물로서의 본능으로 느꼈을 지도 몰랐다. 저 소년은 사신(死神)이라고. 그대로 둔다면, 언젠가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 말 것이라고.
불과 열두 살 소년의 눈빛에 압도돼 버린 열여덟 살의 예니체리 후보생은 소년을 길들이고 싶었다. 검을 추구한다는 한 사람의 전사로서 뛰어난 자질을 지닌 소년이 파멸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두 번째로 놀라게 했던 것은, 그 필립이 자살하려 했던 사건이었다. 자신이 보는 눈앞에서 절벽으로 뛰어내리려 했던 그 일. 그녀가 가까스로 그걸 막은 뒤에, 그는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적이라는 자신에게 매달려, 기절할 때까지 검을 놓지 않고 덤벼들던 자신에게 매달려, 서럽고 괴롭게 울었다.
얀은 그제야 깨달았었다. 과묵하고 점잖은 소년의 안에, 격렬하고 끈질긴 소년의 안에, 또 한 명의 소년이 있다는 것을……. 그에겐 지워진 무게에 지치고 힘들어, 죽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순진하고 여린 또 하나의 소년이 있었다.
그 어린 꼬마가 그토록 무거운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자신을 옭죄고 있었던 걸까? 소년은 팬드래건의 왕이었다. 고작 열두 살의 나이에 왕이 됐고, 숙부가 일으킨 반란에 의해 폐위돼, 4살 아래의 동생과 함께 투르로 팔려와 버렸다.
소년이 가진 처절한 독기는 그때부터 생겨났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린 소년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그녀는 더욱 그를 내버려둘 수 없었다.
어느 쪽이 본성인지 알 수 없었지만, 소년이 파멸의 길로 떨어진다는 것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어쩌면 그녀 역시 어린 마음에 객기를 부른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믿어온 올바른 검의 길만 가르칠 수 있다면 필립도 자신처럼 올곧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할아버지에게 배웠던 모든 것을 성심성의껏 가르치면서, 자신도 훌륭하신 할아버지처럼 누군가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가 앞으로도 결국 포로 신세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던가, 아무리 훌륭한 검사가 된다 하더라도 그는 빛을 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건 안중에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소박한 꿈은 어느 날 갑자기 끝나버렸다. 필립은 동생과 함께 탈옥하다가 사살됐고, 그의 시체는 지하동굴에 버려졌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그녀는 당황하지도 않았다. 탈옥의 대가는 사살이라는 건 그녀 역시 잘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카디스 감옥을 떠났다.
필립이 소중한 무언가였다고 할 수 없었지만, 언제나 가지고 다녔던 것을 카디스 요새의 차가운 감옥에 두고 온 것 같은 기분으로 그녀는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10년 동안, 그녀는 필립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가 살라딘이 되어 눈앞에 나타나기 전까지.
술탄과 칼리프의 내전 속에서 만난 그는 그녀가 기억했던 금발의 나약한 꼬마가 아니었다. 훤칠한 키, 그을린 피부, 강인한 팔, 뛰어난 검술을 가졌고, 최강의 예니체리라고 자부했던 그녀를 무릎 꿇게 만들었다.
너무나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녀 이전 최강의 예니체리인 할아버지의 위명을 보존하기는 커녕, 출신도 알 수 없는 용병에게 졌으니 말이다.
절망감이 엄습해왔고, 차라리 죽었다면 마음이 편해질 정도로 괴로웠다. 하지만 그는 그것 마저 허락하지 않았다.
얀 지슈카에 대해 이미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만 같은 그의 눈빛은 겁이 나고 두려웠다. 대체 그는 누구일까? 천한 용병 주제에 예니체리인 나에 대해 무엇을 안다는 걸까? 그 의문은 살라딘이 그녀를 설득하러 왔을 때 풀렸다.
처연하고, 외로워 보이던 고운 갈색의 눈동자는 강철처럼 단련되고 속을 읽을 수 없는 깊은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를 따라는 부하가 있었고, 신뢰해주는 주군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살라딘의 진짜 모습을 아는 이는 없었다. 그의 눈동자가 읽기 어려워진 만큼, 그의 가면은 두꺼워져 있었다.
두꺼워진 가면의 깊이만큼, 살라딘은 파멸의 길을 걷고 있었다. 얀이 할아버지에게 들은 검의 길과 다른 외도에 가까워진 그였다.
술(術)을 위해선 체(體)가 필요하나, 검(劍)을 위해선 기(氣)가 필요하고, 마침내 도(道)를 위해선 심(心)이 필요하다.
할아버지에게 전수받은 검의 길이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이 완성돼 버린 뒤라면? 몸도, 기도 완성되지 않았는데, 마음이 완성됐다면 어떻게 될까?
물론 불가능한 일이다. 마음이란 모든 것을 초월하는 힘을 갖는 것. 그런 수준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선 평생이 걸려도 부족했다.
하지만 한 가지 예외는 있었다. 그것은 바로 복수의 마음. 복수에는 어떤 것도 필요없었다. 그저 모든 것의 파멸을 바라는 그 마음은 순수함 그 자체일 것이다.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더 깊은 경지에 이르는 진정한 도(道)의 길과는 달리, 복수와 파멸의 길은 손쉽고 빠르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수라의 길이었다.
살라딘이 펼치는 자기스타일의 쌍검술을 보며 그의 검술은 완성을 추구하기보다는 모든 것의 파괴를 추구하는 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히랄하르로데와 아미타유스라는 명검을 얻기 전까지 그의 검은 주인의 힘을 이기지 못해 파괴될 정도로 그의 검술을 강하기만 했다.
그와 같은 수라의 길을 선택했던 검사가 역사상 몇 번이나 존재해 왔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선 자신의 힘에 먹혀 자신마저 파멸해 버렸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막아야한다고 생각했다. 최후의 순간이 된다면 동귀어진해서라도 그를 막아내겠다고 결심했었지만 어느샌가 그는 변해있었다.
복수의 그림자는 엷어졌고, 주위 모두가 진정으로 믿고 의지하는 ‘살라딘’이라는 인간으로 변해있었다. 그 변화의 시작이 자신이 아니라 세라자드라는 여자 때문이라는 걸 알았을 때 씁쓸한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그가 사신의 길을 걷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 안도했다. 예전 열두 살의 소년 안에서 또 다른 소년을 발견했듯이, 복수로 가린 가면 안에 존재하는 순수한 청년을 발견한 그녀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에 휘말렸다.
그렇게 그녀는 살라딘이라는 인간이 살아온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복수로 물들었다가 복수의 수렁에서 빠져나와 진정으로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한 순간까지 모두 함께했다. 비록 그를 변화시킨 사람이 그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의 변화를 진심으로 기뻐하고 좋아했다.
이제 정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그녀가 그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서 두 번이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살라딘을 죽일 각오로 펼친 기술이었기에 서리 칼날에 맞은 여인은 단숨에 심장까지 얼어버리는, 죽음을 맞이했다. 죽음에 이르기 전 그녀는 자신의 광검에게 마지막 명령을 내렸다.
“지하드……. 그를…….”
주인의 뜻에 따라 지하드는 살라딘을 향해 날았다. 지하드 손잡이 끝에 달린 고리는 살라딘의 한쪽 손목을 꿰었고, 살라딘의 손목을 낚아챈 지하드는 그 즉시 허공을 날았다. 그렇게 살라딘은 의지를 가진 검에 의해 그대로 지하공간 바깥으로 날려졌고, 살라딘이 그대로 날아가버리는 것을 본, 클로드는 어떻게 할지 딱 3초 고민하다가 살라딘을 쫓아갔다.
뫼비우스는 아퀴루핌이 살라딘을 구하고, 자신을 희생해버린 광경을 보더니 급히 달려가 아퀴루핌을 안아 일으켰다. 회색 후드를 걷은 그는 아퀴루핌을 애타게 불렀다.
“얀! 얀! 어째서!”
아퀴루핌의 가슴에 손을 가져다댄 뫼비우스는 급히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 덕에 한기에 얼어붙은 그녀의 심장이 간신히 뛸 수 있었지만, 그것 뿐이었다. 한기에 당해버린 심장은 다시 뛸 수 없었고, 뫼비우스가 마력을 끊는 순간 그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미안해, 한. 난 이럴 수밖에 없었어.”
“알고 있겠지? 넌 여기서 죽는다.”
“아니, 이게 바로 살아있는 느낌이야.”
아퀴루핌의 대답에 뫼비우스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방랑자를 살려둔다고 해도, 뫼비우스의 우주를 위한 걸음은 멈추지 않을 거야.”
“알고 있어. 넌 멈추지 않겠지…….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아.”
뫼비우스의 눈에선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렸다. 아퀴루핌은 손을 들어 그의 눈물을 닦아줬다.
“울지 마……. 네 기억 속의 나를 아껴주면…… 돼…….”
“아니……. 난 뫼비우스의 우주를 완성시키겠어. 그리고…… 그곳에서 널 다시 만날 거야.”
아퀴루핌이 뭐라고 말하기 전에 뫼비우스는 그녀의 가슴에 대고 있던 손을 떼었다. 그녀의 심장을 잠시 녹였던 마력이 사라지자 다시 한기가 심장을 멈추게 했고, 아퀴루핌은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싸늘하게 식은 아퀴루핌을 내려놓은 뫼비우스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간다.”
“아퀴루핌은…….”
“뫼비우스의 우주에 걸림돌이다. 다시 살릴 필요없다.”
그 말을 남기고 뫼비우스는 오제의 무덤에서 사라졌다. 뫼비우스가 자신의 부하들과 지하공간에서 사라진 직후, 지하드에 의해 살라딘이 지상으로 나왔고, 클로드도 지상으로 올라오자 다크윙이 기폭장치를 눌렀다.
폭발음과 함께 클럽 바빌론은 그대로 무너져 오제의 무덤을 메워버렸다.
[마침내 도시를 뒤흔들었던 신비스러운 지진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습니다. 서울시청에 따르면 클럽 바빌론 주변의 무허가 공사와 가스 폭발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기묘하게도 바빌론 폭파 이후로, 지반이 다시 안정됐고. 우리 모두 다시 안심하고 오늘을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이상한 일이지만,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그저 서울의 또 다른 하루일뿐이죠 적어도 집값은 내려갔을까요? 다음번에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써니의 FM데이트 였습니다.]
클럽 바빌론의 폭발 테러 사건은 며칠 동안 메인 뉴스감이 됐고,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이들의 이목을 집중시켰지만, 가스 폭발이라는 경찰 조사 결과가 발표되면서 급속도록 관심이 식어졌다.
그 이면에 오제의 무덤이라는 이슈를 덮기 위한 ‘그 분’의 노력과 쉴드의 작업이 있었다는 건 몇몇 사람들만 아는 진실이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에 대해선 알지 못했다.
대낮이었지만 강태연이 앉아있는 바는 영업을 하고 있었다. 바와 같은 술집은 대낮에 영업을 하지 않는 편이었지만, 강태연은 예외에 속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혼자 조용히 바에서 술을 마시고 싶다며 낮 시간을 통째로 빌린 태연은 바텐더가 만들어주는 각종 칵테일을 음미하며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 신진대사가 워낙 대단해 술에 절대 취하지 않는 캡틴 아메리카나 클로드와 같이 태연 역시 술에 취하지 않았다. 그녀가 가진 광마의 피가 주인을 술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막아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술을 마시고 있는 태연 곁에 누가 다가와 앉았다. 190에 가까운 키에 거구를 가진 이 남자는 바로 클로드였다.
“뭐하고 있어?”
“네 번째 잔을 마시고 있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설현 씨에게 물어봐서 왔어. 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럴 필요는 없었는데.”
“알고 있어.”
클로드가 자리에 앉자 태연은 자신의 빈 잔을 바텐더에게 내밀면서 손짓으로 자신과 클로드의 술을 시켰다. 바텐더가 새 술을 준비하는 사이, 클로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엄청난 일주일이었어.”
“그래, 엄청났지. 쉴드 요원들은?”
“전부 떠났어. 카케루와 스카이만 빼고. 둘은 제주도에 볼 일이 있다고 하더군.”
“그런가?”
바텐더가 술을 내오자 두 사람의 대화가 잠시 중단됐다. 새 술을 받은 태연은 클로드에게 잔을 내밀었고, 클로드는 자신의 잔으로 그녀의 잔에 건배했다. 새 술을 단숨에 들이킨 두 사람은 빈 잔을 바텐더에게 내밀었고, 새로운 술이 준비될 동안, 클로드가 또 먼저 말을 꺼냈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
“굳이 말할 필요 없어. 그 일이 생겼지만 어떻게든 감당해야하니까.”
“하지만 박현규는…….”
“클럽 바빌론에서 있었던 일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어. 당신이 죽어서 그 구멍 바닥에 누워있었을 수도 있었지. 하지만 우린 앞으로 나아가야해.”
새 술이 나오자 클로드는 먼저 술을 입에 털어넣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잔을 받기만 한 태연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클로드는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자고, 깜장 마녀.”
“나중에 커피든 뭐든 한 잔 할 수 있겠지.”
태연이 술을 마시는 광경을 뒤로 한 채 클로드는 바에서 걸어나왔다.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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