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GA Universe
Avengers - Legacy of Legend

제7부 Defenders: Dark Resurrection
제3편 결성 (8)
“그런 건 옛날 어렸을 때 동화 같은 이야기인데요?”
훈의 지적이 정확했다.
크리스티앙에게 오제에 대해 설명을 듣는 사람들도, 오제의 추종자라는 인간들에게 공격을 받았으니 듣고 있는 거지, 평상시 같으면 이런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장난치지 말라고 했을 것이다. 크리스티앙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이야기가 어이가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명을 계속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오제의 이야기는 정말 저게 전부여서. 대신 오제의 추종자라는 존재들은 좀 현실감이 있을 겁니다.”
자스민 차가 담긴 잔을 들어 목을 축인 크리스티앙은 설명을 이어나갔다.
“오제의 추종자들의 시작은 언제부터였는지 아무도 몰라. 그들 스스로는 알겠지만, 그레이 팬텀에서 파악한 바에 따르면, 그들의 기원에 대해선 모르고 있더라고. 어쨌든 그들은 오래전 이 땅에 봉인된 오제를 부활시키려고 하고 있지.”
“왜요?”
왜 오제를 부활시키려는 것인지, 그 근원적인 질문을 스미레가 던지자, 크리스티앙은 자신이 알고 있는 걸 말해줬다.
“과거 오제로부터 직접 힘을 받은 존재들이어서, 오제에게 다시 힘을 부여받기를 원하고 있어요. 그 힘을 얻으면 그들은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으니까.”
“어이가 없네. 고작 영생 따위를 누리려고 이 사람들을 죽인 괴물을 풀어놓겠다고?”
영원히 사는 삶이라는 게 얼마나 덧없고 의미 없는 건지,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지원은 혀를 끌끌 찼다.
“세상에는 바보가 많은 법이니까. 어쨌든 오제의 추종자, 즉 오제로부터 직접 힘을 부여받은 자는 이제 두 세 명 정도밖에 남지 않았어.”
“회색의 남자와 관련이 있는 건가?”
살라딘이 묻자 크리스티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 십 년전에 서울에서 알려지지 않은 싸움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오제의 봉인을 풀기 위한 추종자들과 그들을 막기 위한 자들의 싸움이었지. 그때 회색의 남자, 카루얀, 그리고 불꽃의 전승자가 오제의 추종자들을 괴멸 상태로 만들었지.”
“거의 괴멸이겠지. 추종자들이 살아있잖아.”
사소한 것에 신경쓰지 말자는 말을 덧붙인 크리스티앙은 다시 젓가락을 들었다. 허기를 어느 정도 달래긴 했지만 여전히 배가 고픈 모양이었다.
“그렇게까지 세를 확대하진 못했을 거야. 세를 완전히 회복했다면 그레이 팬텀과 손을 잡지 않았을 테니까.”
크리스티앙이 젓가락을 든 이유가 바로, 홍룡문의 사장 노현준이 짜장면을 가지고 왔기 때문이었다. 먹음직스러운 짜장면이 놓여지자, 크리스티앙은 맛있게 비빈 다음 한 입 가득 베어 물었다. 스미레는 오제의 추종자라고 자신을 밝힌 여자, 이세영에 대해 기억해냈다.
“내 숙소에서 한 여자를 만났는데, 스스로를 오제의 추종자라고 했어요.”
“그레이 팬텀에 따르면 그녀는 오랜 세월 동안 오제를 따르며 많은 이름을 가졌다고 합니다. 지금 시대는 이세영이라고 자칭한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오제의 추종자들 중 우두머리로, 추종자들을 이끌어온 존재입니다.”
짜장면을 먹으면서 크리스티앙이 대답하자, 스미레는 또 물었다.
“오제의 추종자들은 누가 있는 거죠?”
“그레이 팬텀이 파악한 바로는 이세영, 그리고 지신, 하바나 요시하루라는 남자 셋이었어요.”
잠시 생각하던 살라딘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레이 팬텀이 얀을 이용하면서까지 추종자들을 돕는 이유는 뭐지?”
“그걸 모르겠어. 아마도 추종자들을 추적해봐야할 거 같아.”
“놈들이 있는 곳을 아나?”
“파악해뒀지.”
놈들이 있는 곳을 알아냈다는 말에 살라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서 민간인에 불과한 지원이나 훈, 스미레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협력을 구하느니, 자신과 크리스티앙이 오제의 추종자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그들을 사로잡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들을 사로잡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백하게 만들면 얀을 찾는 일을 포함해, 그들의 음모 모두를 분쇄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서자, 살라딘은 크리스티앙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빠지도록 하세요. 앞으로의 일은 나와 크리스티앙이 해결하겠습니다.”
“뭐라구요?”
“둘이서 그 많은 적을 상대하겠다고요?”
“무리에요. 함께 하는 편이 훨씬 나아요.”
지원, 훈, 스미레 순으로 반발하자, 살라딘은 냉정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레이 팬텀이라는 놈들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강력한 놈들입니다. 당신들이 더 개입한다면 당신들이 아끼는 사람들 모두 위험을 감수하게 될 겁니다.”
“그렇지만…….”
훈이 끼어들려고 했지만 살라딘은 그를 말렸다.
“훈 씨, 당신의 도움은 고마웠습니다. 하지만 이 이상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어요. 정 걱정된다면 지원이와 함께 쿠사나기 씨를 보호해줬으면 합니다.”
“무슨 소리에요! 이건 내 싸움이에요! 내 전쟁이라구요! 날 무슨 애인양 취급하지 말아요!”
스미레가 반발하자, 살라딘이 살짝 짜증을 냈다.
“그럼 애처럼 굴지 마세요.”
“방금 뭐라고 했지?”
손에서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스미레였지만 이번엔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살라딘과 스미레 사이에 불꽃이 튀면서 긴장감이 조성되자, 지원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진정해요.”
그래도 말리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말리겠다는 의지는 눈꼽만큼도 느껴지지 않았다. 스미레에겐 오제의 추종자와의 싸움은 자신이 맡은 사명이었지만, 살라딘이 보기엔 그녀의 사명 감은 객기일 뿐이었다.
“이 도시가 위험할 수 있고, 오제라는 괴물이 풀려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죠. 하지만 그 일은 이제 우리에게 맡기세요. 이 일에 깊게 관련될수록 남은 인생을 망칠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십시오.”
살라딘으로 인해 분위기가 과열되자, 크리스티앙은 모두에게 진정하라고 말한 뒤, 살라딘을 따로 불러냈다. 훈과 지원, 스미레가 앉아있는 테이블에서 떨어진 곳으로 살라딘을 데리고 간 크리스티앙은 그에게 물었다.
“얀 지슈카와 싸워봤지?”
“그래.”
“그레이 팬텀의 자료에 따르면 살아도 산 게 아니야. 얀 지슈카는 다른 존재가 됐어. 아퀴루핌이라는 코드네임도 따로 있더군.”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나?”
“어려울 거 같던데.”
“그런가?”
순순하게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살라딘을 보고 크리스티앙이 뭔가 말을 하려다가 갑자기 말을 멈췄다. 그의 표정에 긴장한 기색이 떠오르자, 살라딘도 말을 멈추곤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크리스티앙이 보고 있던 건 홍룡문 반대쪽 거리에 있는 검은 밴이었다.
“바깥에 저 차…… 아까부터 계속 서 있던데.”
강남의 호화로운 클럽 중 하나인 바빌론.
밤에는 누구보다 시끄럽고 화려한 빛으로 가득한 클럽이었지만, 낮은 쥐죽은 듯 고요한 곳하기만 했다. 그래서 더 시선이 가지 않는 클럽 바빌론의 낮에 누군가 방문했다.
밤에는 발렛 주차로 바쁜 주차장에 들어선 회색 승용차 한 대가 세워졌고, 그 안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한 사람은 백발과 까무잡잡한 피부가 기묘한 매력을 풍기는 남자, 하스모헬리스였고, 다른 한 사람은 그에 의해서 한국 정부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사무엘 스턴스였다.
스턴스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뛸 듯 기뻐하며 소리쳤다.
“여기가 거기군요! 죄인의 무덤! 오제가 봉인된 곳! 정말 흥분돼요!”
“기쁘다니 다행이군요. 당신이 이 일을 탐탁치 않게 여길까봐 걱정했습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전 이곳에 대한 자료를 보내준 당신에게 너무도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곳은 오제의 무덤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구요!”
“우리에게도 그 이상의 가치가 있지요.”
하스모헬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스턴스를 데리고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고 써 붙인 철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철문 안으로 들어간 하스모헬리스와 스턴스는 제대로 된 엘리베이터가 아닌 공사현장에 설치된 리프트에 올라 지하로 내려갔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하스모헬리스와 스턴스가 탄 리프트가 멈춰섰고, 그들의 눈앞에는 밝게 빛나는 조명과 함께 수많은 전선과 기계들, 그리고 그 안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강남 최대 클럽 지하에 마련된 이곳은 도대체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있고, 각종 장비와 설비들이 잔뜩 있음에도 묘하게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싸늘한 기운이 풍겨오는 곳 중심에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금속으로 된 돔이 있었다. 그 크기는 어지간한 덤프트럭 이상이었는데 돔에는 수많은 전선들이 연결돼 있었고, 그와 맞먹는 수의 조명이 이를 비추고 있었다. 그곳은 가스와 무중력의 진공, 그리고 무언가의 힘으로 굳게 잠긴 봉인의 공간이었다.
“이곳이 오제의 봉인이군요.”
스턴스는 감격한 듯 소리쳤다. 그는 첫사랑을 만난 소녀처럼 매우 들떠있고, 설레어했다.
“서울 밑에 이런 괴물이 봉인돼 있을 거라고 누가 상상하겠습니까? 직접 보는데도 지금도 믿어지지 않아요. 동화책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니까요? 옛날옛날 못된 이무기 ‘오제’가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오제로 고통을 받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다 어떤 용사가 나타나 오제를 무찌르고 영원히 봉인해버렸습니다. 이런 내용의 동화책 보는 거 같아요.”
열심히 수다를 떠는 스턴스를 하스모헬리스는 그냥 웃으면서 볼 뿐이었다.
하스모헬리스와 스턴스 앞에 있는 것은 고대에 위험한 무언가를 가둬놓은 봉인이었다.
이무기 ‘오제’
스턴스가 바라보고 있는 봉인 속에 갇혀있는 괴물의 이름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수천 년 전인 고대에 살던 이무기였는데, 어떤 이유로 용이 되지 못하자 모든 걸 증오하게 돼, 수많은 사람들을 해쳤다.
그걸 보다 못한 고대 왕국의 어느 왕이 자신의 손자와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 겨우 오제를 봉인했고, 그 봉인한 곳 위에 거대한 도시를 세워 영원히 풀려나지 못하게 만들어놓았다.
지금의 서울은 그때 만들어진 오제의 봉인 위에 세워진 도시인 것이다.
이후,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고대 왕국의 왕이 된 손자는 오제의 봉인이 안심되지 않았는지 뛰어난 재주를 가진 이들을 가려 뽑아 봉인을 지키게 만들었다.
왕국이 멸망한 뒤에도 오제의 봉인을 지키는 자들의 역사는 계속 이어졌고, 조선시대 때 오제의 봉인 위에 수도가 건설됐을 때도 봉인을 지키는 자들은 봉인의 힘을 강화하는 쪽으로 도시를 만들도록 도움을 줬다.
“그렇게 신기합니까?”
어디서 가져왔는지, 하스모헬리스가 커피가 담긴 종이컵을 가져와 스턴스에게 건네줬다. 그가 준 커피잔으로 오제의 봉인을 가리키며 스턴스는 말을 이어나갔다.
“인간의 과학력은 날로 발전하고 있어요. 지금은 아이언맨이라는 강철 슈트를 입은 초인이 나타났을 정도죠. 그런데 여기 이 봉인은 인간의 과학력으로 이해할 수 없는 거잖아요.”
이번엔 아까와 달리 하스모헬리스는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물끄러미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의 눈빛에서 ‘네가 해야할 일을 해라’라는 명령어를 읽어낸 스턴스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이고, 쓸데없이 나불거리고 있었네요. 자, 그럼 일을 시작해보겠습니다.”
스턴스는 급히 봉인과 연결된 많은 컴퓨터가 장비된 장치로 뛰어갔고, 그 곳에 앉아있던 추종자의 수하 하나보고 나오라고 했다. 그가 자리를 비키자, 얼른 자리에 앉아 컴퓨터 여러대를 한꺼번에 조작하기 시작했다.
스턴스가 오제의 봉인에 대해 조사를 시작하는 것을 보고 있는 하스모헬리스에게 작은 키에 곱슬머리를 하고, 스키니 진에, 조금은 힙한 상의와 외투를 입은 남자가 다가왔다.
“어서오십시오. 저 친구가 그 사람인 거요?”
“그렇습니다. 미스터 블루가 봉인의 술식을 해제할 겁니다. 술식이 해제되면 거기에 신의 불꽃으로 마지막 봉인을 해제하면 됩니다.”
“드디어 오랜 숙원이 해결되는 군요.”
곱슬머리의 남자는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대단하군요. 그토록 오랫동안 오제의 봉인을 풀겠다는 사람들이 이어졌다는 게 말입니다. 심지어 수십 년 전에는 회색의 남자에게 괴멸적인 타격을 받지 않았습니까, 한진우 씨?”
한진우라고 불린 남자는 주위를 살펴보더니 하스모헬리스에게만 들릴 만한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다.
“난 뭐 딱히 오제의 봉인을 푸는 일엔 관심 없습니다. 그저 빚진 게 있어서 갚을 뿐이죠.”
“빚이라뇨?”
“강력한 힘을 얻기 위한 기반을 추종자들이 마련해줬지요. 서로 이해관계가 맞은 것이지만, 나는 강력한 힘을 연구해 얻고 싶은 기반이 필요했고, 추종자들은 즉시 사용할 수 있는 병력이 필요했죠. 회색의 남자에게 궤멸당한 직후, 얼마 남지 않은 모든 재력을 내게 투자했으니 먹은 만큼 토해내야겠죠.”
“기브 앤 테이크인 거군요.”
한진우의 눈에는 무언가의 야심이 번뜩였다. 하스모헬리스는 그의 눈에서 보인 야심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물론입니다. 세상에 사기꾼들이 많다고 하지만 전 어디까지나 연구를 하고 싶은 사람일 뿐, 사기꾼이 아니니까요.”
“추종자들이 거느리고 있는 병력들은 대부분 당신 작품인 겁니까?”
한진우처럼 자신의 야심을 솔직히 드러내는 사람에겐 부추기는 말을 해주고, 떠받들어주면 충분했다. 하스모헬리스가 감탄했다는 듯 바라보자, 한진우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동안 자신이 연구했던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혈귀라는 존재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M재단의 유산들도 아주 훌륭했구요. 그 덕에 추종자들을 지탱할 인재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혈귀와 또 다른 유산을 연구해낸 자의 지식이면 그레이 팬텀에 충분한 도움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스카우트를 제시하면 쉽게 풀릴 일이 어렵게 꼬일 수 있었기 때문에 하스모헬리스는 신중을 기했다.
“오제의 봉인이 풀리면 앞으로 뭘 할 생각입니까?”
그러자 한진우는 저 멀리에 있는 오제의 봉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건 우리들의 리더가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죠.”
누군가 홍룡문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살라딘과 크리스티앙은 즉시, 그 사실을 일행에게 알렸다. 지원과 스미레는 가게 주인과 주방장을 식당 안쪽 방에 숨으라고 한 다음, 살라딘, 크리스티앙, 훈이 블라인드를 통해 바깥을 보고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홍룡문은 가게 안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 다른 손님들이 들어오는 걸 유도할 목적으로 전면을 유리로 만들어놓았다. 살라딘들은 이곳에 들어오면서 바깥의 시건을 피하기 위해 블라인드를 쳐놨는데, 그걸 통해서 바깥을 살펴보고 있었다.
“오제의 추종자나 그레이 팬텀일까요?”
“단정하기 어렵군요.”
훈의 물음에 살라딘은 그렇게 말했다. 어떻게 자신들을 찾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오제의 추종자나 그레이 팬텀이 이 자리에 있는 스미레를 원한 이상, 이곳을 찾는 건 시간문제였을 뿐이었다.
살라딘들의 실력은 스미레의 숙소에서 경험했기 때문에 그들은 나름대로 중무장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총기 규제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총을 사용하긴 힘들테니, 쇠파이프나 야구배트, 각목, 사시미 칼 정도로 무장할게 분명했다.
“뭔가 전 세계급으로 노는 범죄단체 같은 이미지였는데, 총도 안 사용해요? 영화에선 그런 거 막 쓰던데?”
라고 지원이 말했지만, 살라딘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수사고문에 불과하다고 해도 수사당국에 몸을 담고 있는 처지라, 한국에서 총을 가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대한민국은 CCTV 공화국이야. 거리 전부를 CCTV로 채워서 범죄율을 낮추겠다고 결심한 나라인데, 그걸 피해서 총기류를 들여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
그때, 방금 전까지 그들이 앉아서 식사를 하고 있던 테이블 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나라면 여길 안 골랐을 거예요. 포춘 쿠키는 질색이라서.”
일행 모두 돌아보니 그곳에는 이세영이 우아하게 앉아있었다.
“어른답게 대화로 풀어가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찾아왔습니다.”
“원하는 게 뭐지?”
살라딘이 묻자, 세영은 그에게 반가움을 표했다.
“살라딘 씨인가요? 안타리아의 방랑자에 대해선 저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와 함께 했다면 저희는 아버지의 봉인을 깨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얻었을텐데 아쉽습니다.”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짓은 하고 싶지 않군.”
“당연하죠. 그래서 저희는 플랜 B를 사용해야 했답니다.”
일행들이 테이블 쪽으로 다가오자, 세영은 이번엔 스미레에게 말을 걸었다.
“쿠사나기 스미레 씨, 이야기 도중에 갑자기 사라져서 죄송합니다. 다시 사과드리죠.”
“우릴 죽이려고 했잖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당신은 아니었습니다. 오제의 추종자들은 항상 불꽃의 전승자에게 크나큰 존경심을 갖고 있죠.”
“네 존경은 내게 아무 의미도 없어. 쿠사나기 일족을 공격한 이유와 날 데려가려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당신에게 사소한 부탁이 하나 있어서요.”
“부탁?”
“내가 항상 원했던 것이 있습니다. 어둠 속에 빛을 가져오는 것이죠.”
잠자코 세영의 말을 듣고만 했던 훈이 테이블에 기대어 놓았던 일륜도를 들면서 대화에 끼어들었다.
“오제의 봉인을 풀려는 건가?”
“당신은 소개를 받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
세영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없던 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훈이 너와는 정식으로 통성명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세영은 살짝 불쾌한 듯 입을 열었다.
“여기서 무슨 유대감이 형성된 것처럼 보이는 군요. 그게 당장은 약간의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리 오래 가진 않을 겁니다. 서로에게 실망할 테니까요.”
“아직까진 실망하진 않았어. 오제의 봉인을 풀기 위해 불꽃의 전승자가 필요한 건가?”
지원이 오제의 봉인과 스미레와의 관계를 추론해냈지만, 세영은 그에 대한 답을 확인해주지 않았다.
“글쎄, 그거야 말할 수 없죠. 하지만 내가 하고 있는 일은 말해주죠.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모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오제의 추종자들이 모였을 때를 아나요, 메디치 씨?”
“많은 사람이 죽었지.”
이 자리에서 오제의 추종자들이 저지른 오제 봉인과 관련된 사건을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크리스티앙 뿐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태어나기 전이거나, 다른 나라에 있었고, 살라딘은 그때는 깨어나기 전이라 사정을 알지 못했다.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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