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GA Universe
Avengers - Legacy of Legend

제7부 Defenders: Dark Resurrection
제2편 격돌 (5)
어둠이 내린 커다란 요새.
요새가 자랑하는 견고한 성벽 너머로 끝없이 이어진 횃불의 행렬이 보였다. 밤을 밝히기 위해 켜놓은 횃불의 양은 요새 내의 숫자보다 요새 바깥의 숫자가 훨씬 더 많았다.
이쯤 되면 요새의 견고한 성벽이 있다고 해도 감당해내기 어려웠다. 현실적으로 보면 요새가 함락되는 건 시간문제일 수 있었다.
요새의 건조한 밤 바람을 맞으며 살라딘은 요새 바깥의 끝없이 이어진 횃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은 지금과 달랐다. 실버 블론드의 머리카락은 탁한 갈색머리카락과 커다란 터번으로 가리고 있었고, 낡은 흰색 망토와 검은 조끼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허리에 찬 두 개의 검은 살라딘이 수련을 하면서 휘두르던 두 개의 검과 같은 것이었다.
성벽 밖 횃불들을 바라보던 살라딘은 자신의 옆에 얌전히 앉아있는 커다란 마룡으로 걸어가 막 올라타려고 했었다. 아니, 올라탔어야 했다. 방금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면.
“조국으로 돌아가는 건가?”
날카로운 물음에 살라딘은 뒤를 돌아보면서 대꾸했다.
“글쎄.”
그가 돌아본 자리에는 방금 전 살라딘이 사진으로 보았던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자, 얀 지슈카가 서 있었다.
“후후, 결국 모든 투르 사람들은 너에게 놀아난 셈이 됐군.”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조롱하는 듯이 말했다. 살라딘은 그런 그녀를 보며 씁쓸하게 대꾸했다.
“이런 일이 발생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어.”
“하지만 결국 우리 투르는 내전으로 초토화 된데다, 이젠 네 녀석들의 속국이 되게 생겼군. 이 상처를 회복하려면 한 100년쯤은 지나야 될까?”
얀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고는 살라딘을 노려보았다.
“이게 다 네 놈 때문이야.”
그녀의 말에는 한 치의 틀림이 없었다. 요새 바깥에 주둔해 있는 군대는 살라딘의 고국에서 투르로 원정을 온 병력이었다. 살라딘이 지금 살고 있는 나라, 투르는 지도자인 술탄이 교체될 때마다 왕자들 사이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이 따라왔다. 피비린내 나는 내전 끝에 겨우 한 명의 왕자가 모든 권력을 손에 넣었지만, 그는 흑색 가면을 쓴 검사에게 암살당했다.
그 혼란을 수습할 겨를도 없이, 살라딘의 고국은 투르로 쳐들어왔다. 계속된 내전으로 국토가 초토화 된데다, 외침까지 겪었으니 투르는 얀의 말대로 100년이 지나야 회복이 될 정도로 깊은 상처를 입었다.
살라딘은 얀의 말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나의 가장 아픈 곳을 집어내어 그것을 눈앞에 들이댔다. 하지만 이젠 그것도 상관없었다. 그녀의 말이 언제나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엔 단지 약한 칼리프 쪽을 도와, 투르의 내전을 오래 지속시킬 의도였지. 하지만 칼리프가 이기리라고는 생각 못했어.”
살라딘은 씁쓸하게 솔직한 생각과 심정을 털어놓았다. 그의 솔직한 말에 놀랐는지 얀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러다 그녀는 살라딘이 방금 전에 걸어나온 호화로운 막사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렇게 된 것도 다 투르의 운명이겠지. 하지만…… 셰라자드 님만은 지켜다오.”
살라딘이 물끄러미 바라보자 얀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분이 쓰러지신다면 모든 투르인들은 다시는 헤어나지 못할 절망에 빠지고 말 거야. 그분은 투르에 남은 마지막 빛이다.”
얀의 얼굴에는 언제나 같은 묘한 자만심이 섞여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이 떠올라있었다. 그녀의 홍갈색 눈동자에는, 그녀의 말이 진심임을 나타내 주는 강한 의지가 녹아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눈동자 안에 흔들림이 보이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살라딘이 복수하려는 대상이 투르라는 나라이고, 이제 완벽하게 복수를 성취한 그가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일까?
하지만 얀은 틀렸다. 살라딘에겐 이제 흔들림이 없었다. 복수심은 애저녁에 내려놨고, 투르에 복수를 하려던 어린 소년은 이제 이 자리에 없었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투르인인 살라딘 뿐이었다.
살라딘은 딱딱하게 굳어있는 얀의 얼굴을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기 위해 가는 거다. 팬드래건의 버몬트라는 자가 누구든 간에, 내 신분을 밝힌다면 내 부탁을 거절하진 못할 테니까.”
순간 얀의 표정에 놀람의 물결이 순간적으로 퍼져나갔다. 놀라움은 잠시뿐, 얀의 얼굴은 다시 원래의 냉정함으로 돌아왔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지?”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지?”
“넌 팬드래건의 왕자잖아? 이제야말로 꿈에 그리던 고국에 돌아갈 기회가 생겼는데……. 더구나 투르라는 큼지막한 선물까지 안고서 말이야.”
얀의 말은 언제나 그렇듯 이번에도 맞았다. 현실적으로 봤을 때 투르라는 나라의 내전을 길어지게 만들어 국력을 초토화시킨 살라딘은 고국으로 돌아가면 영웅으로 대접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살라딘은 현실을 따를 생각이 없었다.
“글쎄…… 모르겠어.”
살라딘은 천천히 눈앞에 있는 마룡의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는 내가 누구인지 혼란해지기 시작했어. 팬드래건의 왕자 필립으로서의 나와, 시반 슈미터의 대장 살라딘으로서의 나……. 처음에는 단지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살라딘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필립이 희미해진 느낌이야.”
얀은 말없이 살라딘을 바라볼 뿐이었다. 살라딘은 깊은 한숨을 쉬면서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어. 사람의 인생이란, 누구나 깨지 않는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야. 팬드래건의 왕자로서의 인생도 꿈, 시반 슈미터의 살라딘으로서의 인생도 꿈이라면…… 나는 살라딘을 선택하고 싶어.”
살라딘이 왜 이런 소리를 하는 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얀의 표정에 확실한 의문과 놀람이 떠올랐다.
“무슨 의미지?”
한 단계 높아진 그녀의 목소리에 대해 살라딘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쓴웃음이 아닌, 그저 정말로 우연하게 지어진 차분한 미소였다.
“이번 전쟁이 평화스럽게 끝나게 된다면 나는 투르에 남고 싶어. 물론, 내 정체를 알게 된 사람들이 나를 반겨줄 지는 의문이지만…….”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야?”
“글세….”
살라딘은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름다운 투르의 달, 쏟아질 정도로 촘촘하게 하늘에 박혀있는 아름다운 투르의 별들. 살라딘이 처음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됐던, 그날 밤도 이렇게 많은 별이 보였고, 달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란 인간은 네 말대로 팬드래건에는 공을 세웠을지 모르지만, 투르에는 말로 다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말았지. 내가 팬드래건인일지라도 영혼은 투르인이야.”
서늘하지만 살갑게 피부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막의 밤바람. 군데군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내는 요새 주변의 풀소리, 그리고 경비를 위해 피워둔 모닥불과 횃불들의 자잘한 불꽃 소리를 배경으로 삼고, 살라딘은 선언했다.
“나는 투르를 떠날 수 없어. 아마 평생을 바쳐 투르에 속죄하며 살아 갈 지도 모르지.”
얀과 살라딘 사이에는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그러한 조용함 속에서, 얀은 살라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너 답지 않게 감상적이군. 셰라자드 때문이야?”
“글세, 인간은 서로를 변하게 하는 생물인 것 같아.”
뭔가 엉뚱한 선문답이 오갔고, 살라딘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부하들을 만나고, 셰라자드를 만나고, 너를 만나가며…… 필립은 지워지고 살라딘만 남았는지도. 하지만 내 신분을 밝힌 뒤에도 투르로 돌아올 수 있을까?”
그 부분은 살라딘도 몰랐다. 자신이 적국의 왕자이며, 복수를 위해 투르의 내전을 장기화시킨 원수라는 게 밝혀져도 투르로 돌아올 수 있을까? 살라딘은 돌아오고 싶었다. 투르가 바로 내가 살아가야할 땅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적국의 왕자였다. 그것만은 아무리 햇빛에 그을리고 머리를 염색한다 해도 변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살라딘이 투르에 머무르겠다고 선택한다는 사실 자체가 두 나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도 전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갑자기 얀이 큰소리로 외쳤다.
“돌아와!”
살라딘이 약간 놀란 눈으로 보았다.
“반드시 돌아와야 돼. 난 너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어.”
얀은 서둘러 다시 목소리를 낮췄지만, 그녀의 눈빛에 담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의 그런 마음에 살라딘은 고마웠다. 이제는 그것에 대해 망설이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그리고, 앞으로 너는 자유다.”
살라딘의 말에 얀은 코웃음을 쳤다. 언제나의 표정과 오만함을 담은 채로.
“흥! 넌 네가 한 말도 잊었느냐? 나는 너의 노예다. 내가 너를 이길 때까지 나는 너의 노예야. 투르에 서 계약은 신성한 것! 특히 예니체리에게는 절대적인 것이지. 계약은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없는 거야.”
얀의 말에 살라딘은 한 방 먹은 듯 했다.
“반드시 돌아와서, 내가 복수할 기회를 줘야 해. 알았어? 도망치는 건 용서하지 않아.”
바이크와 함께 내달리면서, 살라딘은 머릿속에 떠오른 얀과의 대화를 다시금 곰씹었다. 그녀를 검으로 이기긴 했지만 살라딘은 여전히 얀을 이기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항상 얀에게 배웠고, 그녀의 한 마디에 새삼스럽게 깨닫게 됐다. 순간의 굴욕에 부질없이 목숨을 내던지는 것이 작은 용기라면, 굴욕을 딛고 일어서 언젠가 스스로 복수하는 것이 진짜 용기라고 다그쳐서 살라딘을 일깨웠고, 마지막엔 살라딘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다.
그때는 얀에게 차마 대답하지 못했던 말을 살라딘은 지금 나지막한 목소리로 답했다.
“팬드래건의 왕자이건, 투르의 살라딘이건…… 예니체리의 도전에서 도망칠 수야 없겠지. 반드시 돌아오겠다.”
현규와 헤어진 뒤, 지원이 향한 곳은 김철수의 집이었다. 사무실로 향하는 건 그리 큰 도움이 될 거 같지 않았고, 많은 폭발물을 가지고 있는데다, 자신의 사무실에서 납치됐다면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김철수의 아내, 오민애는 자신의 남편을 가리켜 ‘가족과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김철수는 평소에 가장 많은 시간을 직장과 집에서 보냈을 것이고, 이번 일에 대한 무언가 흔적을 남겼다면 그 두 장소일 것이라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지원은 일단 김철수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그의 직장에 연락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물론 자신의 신분은 전혀 밝히지 않고, 건물 설계를 의뢰하고 싶은 사람 ‘최애라’로 위장한 건 기본이었다.
김철수의 직장과 미팅 시간을 요청한 것을 마무리했을 때, 지원은 그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꽤 능력 있는 사람이었는지, 김철수의 집은 꽤 규모가 있는 2층 집이었다. 오민애를 만날 수 있을까라고 걱정을 조금 했지만 지원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김철수가 납치됐기 때문에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오민애를 비롯한 그의 가족은 조사를 위해 경찰서와 집을 왔다갔다하는 상황이었다. 오민애를 운 좋게 만난 지원은 그녀에게서 남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두 달 전 쯤, 우린 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었죠. 그이가 떠나고 싶어 했어요. 도무지 말이 안돼요. 답을 찾으려고 당신한테 갔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말하면서 오민애는 눈물을 흘렸다. 지원은 얼굴 가득, 그녀가 표현할 수 있는 애도의 뜻을 표하면서 말했다.
“경찰이 수사하고 있으니까요. 우리끼리 하는 얘긴데, 좀 더 조사해보고 싶군요.”
“경찰 수사 외에요?”
“네.”
“보수를 얼마나 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금 당장은 그런 걱정 마세요.”
지원의 직업이 사립탐정이니 보수에 대한 걱정을 하는 게 당연했다. 특히 오민애는 남편과 다르게 직장생활을 하는 듯한 느낌을 풍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전업주부일 게 분명했기 때문에 앞으로 경제상황을 걱정하는 듯 했다. 김철수라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추가로 조사하는 것이니, 지원은 이번 의뢰엔 기본 금액 이상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
“혹시 하나라도 저한테 말씀 안 하신 게 있나요? 마약이나 도박, 이상한 페티쉬라던가? 그 중에 뭐 하나라도 연관된 게 있나요?”
“아뇨, 없어요. 왜 그런가요? 뭐 보셨어요?”
“누군가 부군을 노린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납치할 리 없으니까요.”
“무슨 말씀이세요?”
“확실하진 않아요.”
지원 역시 확실한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섣불리 말을 꺼내는 건 부담스러웠다. 특히 현규가 이야기해준 진상에 따르면, 김철수는 어떤 여자에 의해 협박을 당했고, 그녀에게 붙잡혀 갔다. 그렇다면 그를 둘러싼 음모나 흑막이 생각 이상의 것일 수 있고, 이는 김철수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래서 더 말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다.
“이 모든 게 전혀 남편 같지 않아요. 그이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어요. 제가 말씀 드리지 않은 것도, 제가 모르는 것도 없어요. 그이는 두 가지만을 사랑했죠. 우리하고 자기 직업요. 그게 다였어요. 그게 그이의 삶 전부였죠.”
그때였다. 초인종 소리가 울렸고, 오민애는 지원에게 양해를 구한 뒤 현관 쪽으로 나갔다. 지원이 오민애가 내온 주스를 마시며 김철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쯤, 현관 쪽이 소란스러워졌다. 지원이 슬쩍 내다보니 그곳에는 노년의 부부가 서 있었는데, 아마도 오민애 아니면 김철수의 부모인 듯 했다.
오민애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게 낫다고 생각한 지원은 뭔가 더 정보를 얻은 게 있으면 연락하겠다는 말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
집에 정보가 없으면, 직장에는 뭔가 더 정보가 있겠지라는 생각에 김철수의 직장 쪽으로 걸어가던 지원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고 있다는 기묘한 느낌에, 지원은 지하철역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지하철역과 가까워지면서 번화가로 나오는 길이었는지 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지원은 이들과 다른 이질적인 느낌이 자신이 주위를 살피자 급히 몸을 숨긴 것을 느꼈다.
도대체 김철수라는 건축사는 어떤 인간이길래 그의 납치를 조사하는 사립탐정에게까지 미행이 붙는 건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지원은 자신을 미행하는 자가 누구인지 알아내기 위해 천천히 다시 걷기 시작했다.
계속 앞으로 걷다가 지원은 미행하는 자게 눈치채지 못하게, 길가에 있는 가게 하나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곤 은밀한 곳에 몸을 숨긴 다음 자신을 미행하던 자가 지나쳐가기를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원은 자신을 미행하던 자를 찾아냈고, 오히려 그를 뒤에서 쫓기 시작했다. 뒤에서 보니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였는데, 그는 지원이 역으로 자신을 미행하는 걸 눈치 챘는지, 급히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미행한 자를 쫓아 골목 안으로 들어간 지원은 그가 더 빠른 걸음으로 더욱 안쪽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더욱 빠르게 쫓아갔다. 아쉽게도 골목은 막다른 골목이 아니라 반대쪽에 출구가 있었고, 그쪽에 검은 승합차가 서더니 검은 양복의 남자는 급히 차에 올라탔다.
남자를 태운 차가 도망치는 것을 보며 혀를 차던 지원은 급히 휴대폰이 울리는 것을 알아채곤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최애라 씨께 받은 전화 답신입니다.]
“네?”
[여긴 화담 건축사무소입니다.]
화담 건축사무소라는 말에 지원은 아차 싶었다. 지금 전화가 온 곳은 김철수가 일하던 직장이었다. 지원은 오민애를 만나기 전, 김철수의 직장에 연락해서 미팅을 요청한 것과 그 과정에서 자신이 ‘최애라’라는 가명을 쓴 것을 기억해내곤 급히 얼버무렸다.
“아, 그래요, 저에요. 죄송합니다.”
[오후에 방문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그러자 전화를 건 상대방은 화담 건축사무소의 주소를 알려줬다. 주소를 머릿속에 저장한 지원은 전화를 끊고 골목길을 빠져나갔다.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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