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GA Universe
Avengers - Legacy of Legend

제7부 Defenders: Dark Resurrection
제1편 통곡 (5)
인구 1000만명이 모여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대한민국의 심장이자 그 나라의 역사에 있어서 상징성이 매우 높은 도시다.
하지만 한 나라의 수도이고, 상징성이 높다고 해도, 모든 대도시들이 겪는 수명에서 예외일 수 없었다.
원래 인류가 만든 도시는 어느 정도 성장하기 전까진 도심에 상업, 주거, 산업 지역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후 본격적으로 도시가 성장해 수요가 많은 도심 지역의 땅값이 크게 오르면 이를 부담하기 어려운 주택들은 도심에서 외곽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이로 인해 도심에는 높은 땅값을 부담할 능력이 있는 상업 시설들이 다수를 차지하는데 상업 시설의 특성상 상주인구는 매우 적은 대신 유동 인구가 많은 편이다. 결국 도심의 상주 인구는 줄어들게 되는데 이를 도심 공동화 현상이라고 부른다.
서울의 대표적인 예가 종로구와 중구다. 서울의 발달 초기에는 종로구와 중구가 중심지였고, 대체로 오래된 도심이므로 도심 공동화를 공통적으로 겪고 있다.
서울의 경우는 좁은 땅에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서구권보다 도심지를 차지하고 있는 상점들이 밤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는 경우가 많아 동 트는 새벽녘 정도가 아니면 도심이 공동화된 것을 확인하기 어렵다.
서울의 도심지역에 위치한 어느 건물은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노후화된 시설, 그리고 ‘나 그래도 서울 중심지역에 있는 건물이야’라는 마지막 자존심을 내세우듯 높은 월세를 자랑했다. 그래서 많은 가게나 사무실들이 건물에 들어왔다가 결국 다른 지역으로 이전했는데, 수년 전부터 들어온 한 사무실만큼은 높은 월세를 부담하면서 건물에서 나가지 않았다.
그 사무실은 탐정 사무소였는데, 이름은 ‘LTK’였다.
탐정사무소 LTK가 있는 건물의 엘리베이터는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낡았다. 덜컹거리기는 기본이고, 가끔 고장으로 멈출 때가 있으며, 당연한 소리겠지만 엘리베이터 안의 CCTV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뒤에 누가 무엇을 하는지 엿볼 수 있는 거물이 엘리베이터 입구 위쪽에 하나 붙어있는 게 전부였다.
엘리베이터 입구 위쪽에 붙은 거울에는 한 여자가 벽에 기대어 있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목에는 회색 스카프를 두르고 검은 가죽재킷, 그리고 청바지를 입은 여자였는데, 선글라스로 얼굴의 반을 가리긴 했지만 그녀는 미인이었다.
그런 외모와 별개로 그녀의 입에선 술냄새가 풍겼다. 지금이 오후 늦은 시간임을 감안하면 점심을 먹으면서 반주를 한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에 기대어 있던 그녀는 문이 열리자, 살짝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내리는 타이밍을 살짝 놓쳐 닫히려는 문에 무딪힌 건 덤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검은 재킷과 회색 스카프의 여자는 오래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복도를 걸었다. 평상시 같으면 이대로 사무실까지 걸어가서 그곳에서 빈둥거리거나 놀았겠지만, 오늘은 웬일인지 평상시 같지 않았다. 누군가 그녀를 찾아왔기 때문이었다.
“혹시 현지원 씨인가요?”
대꾸없이 자신을 부른 사람을 본 현지원은, 그녀가 검은색 상하의를 갖춰 입은 40대 후반의 여성이며, 뭔가 다급해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는 걸 보았다. 그녀의 뒤에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불량끼와 중2병이 한가득한 소녀가 있었는데, 아마도 지원을 부른 사람의 딸인 듯 보였다.
“제 이름은 오민애에요.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서 찾아왔어요.”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탐정은 안 해요. 탐정일 하는 직원이 돌아올 거니까 그 친구나 만나고 가요.”
“예, 무슨 소리죠? LTK탐정사무소의 현지원 씨 아닌가요? 이 신문 기사에 당신이 사건을 해결했다고……”
오민애는 오려온 신문기사를 지원에게 내밀었다. ‘경찰도 해결 못한 돈암동 연쇄 살인사건, 탐정이 해결하다’란 커다란 헤드라인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신문기사였는데, 그걸 본 지원의 표정을 그야말로 썩어 들어갔다. 뭔가 못볼 걸 본 것처럼 그녀는 기사를 외면하더니 오민애에게 손을 내저었다.
“그거 내가 해결한 거 아니니까, 이따 직원 오면 연락드릴게요. 연락처는 두고 가세요.”
“무슨 소리에요? 여기 기사에 있는 사진에는 당신이 찍혀있는데요?”
“아, 그거 나 아니라니까!”
“가요, 엄마. 저 여잔 신경도 안 쓰잖아요.”
깜이나 짝짝 씹으면서 지원을 정말 마음에 안 든다는 페이스로 보고 있던 딸은 사건에 관심도 없는 지원에게 불만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런 딸의 태도에 안 그래도 비협조적인 지원이 더 비협조적으로 나올까 걱정이 된 오민애는 딸을 나무랐다.
“선영아, 제발! 현지원 씨, 제 남편이 실종됐어요. 남편이 없어진 지 벌써 일주일째에요.”
“경찰엔 연락해봤어요?”
“아뇨.”
“왜요? 공짜로 도와줄텐데?”
그렇게 대꾸하면서 지원은 사무실 도어락 커버를 올렸다. 도어락 숫자에 불이 들어오자 지원은 습관처럼 비번을 눌렀고, 문을 견고히 닫아주던 자물쇠가 해제됐다. 지원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오민애는 다급히 지원의 팔을 잡았다.
“돈이 문제가 아니에요. 뭔가가 잘못됐어요, 제 남편은 시계처럼 정확한 사람이에요.”
시계처럼 정확하다니 그건 무슨 소리란 말인가? 딱히 관심은 없지만 지원은 더 들어두기로 했다.
“그이는 건축가고 매일 아침 여덟 시에 출근했다가 매일 오후 6시 반에 돌아오죠. 하지만 최근에는…….”
“변했다고요? 예민해지고? 좀 긴장된 것 같기도 하고요?”
지원이 묻자, 오민애는 긴장한 얼굴로 답했다.
“그이 같지 않은 일이죠.”
“바람난 거네요.”
순간 오민애의 얼굴에 노여움이 깃들었다. 처음부터 적극 상담해줄 생각이 없던 지원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말을 아무 생각없이 내뱉었다. 술에 의해 잠시 잠들어있는 그녀의 통찰력은 ‘바람’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지만 지금의 지원은 그걸 무시했다.
“부끄러워할 거 없어요. 늘 있는 일이니까요.”
“그이를 나만큼 몰라서 그래요.”
“알 필요도 없죠. 하지만 기왕 여기 오셨으니 제 전문가로서의 의견을 말해주죠. 이혼 전문 변호사나 찾아요.”
그 말을 끝으로 지원은 사무실 문을 닫아버렸다. 사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와 호소할 생각은 없었는지 오민애는 딸과 함께 가버린 듯 했다. 지원은 사무실 탕비실로 들어가 찬장에 숨겨놓은 위스키를 꺼냈다.
어렸을 때부터 이상할 정도로 술을 싫어했던 지원은 요즘에 항상 술을 입에 달고 살고 있다. 잊고 싶은 그 일, 자신의 무력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그 일을 잊고 싶어서였다.
너무도 약해서 지켜주지 못했고, 잃어버렸다. 그리고 이어진 지옥같은 후회…‘내게 조금 더 힘이 있었더라면……’이라는 자책감… 후회와 자책감 때문에 매일매일 술로 자신을 달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마시는 술은 어떤 맛도 없었다. 즐기지 못한 술이라서 그런걸까?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별, 가을에는 보름달, 겨울에는 눈, 그것만으로도 술은 맛있는 법이지. 그래도 맛이 없다면…… 그건 자기 자신이 어딘가 병들어 있다는 증거란다.’
항상 멋지게 음주를 즐기면서 망할 소장이 했던 말도 기억났다. 자신이 병 들었다는 소리일까?
분명히 맞을 거다. 지원 자신은 크게 망가진 상태니까 다시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게 지금의 지원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사건을 해결한 천재 탐정은 오늘도 알코올에 쩔어 지내고 있다.
위스키를 한 컵 가득 따른 뒤, 단숨에 들이키려던 지원은 갑자기 울린 전화벨에 손을 멈췄다. 전화벨이 울려도 유나는 받을 생각이 없었다. 한참 울리던 벨이 멈춰지고, 자동응답기로 넘어갔다.
[LTK탐정사무소입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용건이 있으면 메시지를 남겨주시길 바랍니다.]
[현지원 씨! 김철수를 찾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거요.]
남자의 거친 목소리에 지원은 술잔을 내려놓고 전화기 쪽으로 달려갔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전화 저편에서 느껴졌다. 수화기를 들은 지원은 급히 상대를 향해 소리쳤다.
“여보세요?”
하지만 전화는 끊어진 상태였다. 신호음만 내고 있는 수화기를 바라보던 지원은 원래대로 내려놓고는 며칠 동안 켜지 않았던 자신의 노트북의 전원 스위치를 눌렀다.
자료를 찾는 노트북 타이핑 소리와 마우스의 딸깍거리는 소리 외엔 한동안 더 조용할 거 같았던 LTK 탐정사무소에 깊은 한숨소리가 들려온 것은 1시간 가량 시간이 흐른 뒤였다.
오랜만에 노트북을 켠 지원은 화면에 나타나있는 ‘김철수’라는 이름을 가진 건축가에 대한 각종 정보가 담긴 수많은 창들을 꼼꼼히 읽어보고 있었다.
“MIT를 졸업하고 두바이, 맨하탄에서도 고층 건물을 설계했네. 그리고 서울에서도 몇 개 건물을 맡아 설계했고.”
조용히 중얼거리던 지원은 의자에 기대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김철수와 수수께끼의 전화에 대한 정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공식대로 정보들을 정리하던 현지원의 눈에 전화기가 들어왔다.
애초에 사건을 맡지 않으려고 했는데, 쓸데없이 전화를 걸어서 이렇게 사람을 귀찮게 만드냐라는 생각에 지원의 잘생긴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러다 지원은 ‘전화추적’이란 단어에 생각이 미쳤다. 번호를 재설정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상대가 초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번개같이 스쳐지나갔다.
생각이 정리됐다면 남은 건 행동뿐이었다. 지원은 갑자기 전화기를 들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지원이 전화를 건 쪽은 기지국인 듯 했다.
“안녕하세요, 방금 발신자 불명 전화를 받았는데 어디서 걸려온 전화인지 알 수 있을까 싶어서요. 좀 도와줄 수 있을까요? 있죠, 우리 할아버지 같은데 치매가 있으신 분이라서요. 저한테 연락하려는 것 같아요.”
오민애에게 퉁명스럽게 말하던 말투와는 전혀 다른 상냥한 말투였다. 잘 들어보면 애교도 살짝 섞여 있었다.
“지금 전화번호가 있으니 바로 알려드릴 수 있어요. 정말요? 정말 고마워요.”
상담원과 몇 마디 주고받은 지원의 입에서 서울 시내 어딘가의 주소가 나왔다. 전화 끊자마자 지원은 아까 자신이 말한 주소를 검색했다. 서울 내에 존재하는 구 시가지 내의 어느 건물을 가리키는 주소였는데 그걸 본 지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딴 사람 몰래 일 저지르고 싶으면 딱 좋은 곳인데?
자리에서 일어난 지원은 벗어뒀던 자신의 재킷을 들어 팔을 꿰었다. 지원이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 바깥으로 나갔다.
서울 내 모 카페.
비행기에서 쌓은 묘한 인연과 공항에서의 한바탕 소란을 겪은 뒤, 훈과 스미레가 온 곳은 이곳이었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공항 안의 카페는 이용할 수 없으니, 공항에서 적당히 떨어진 곳까지 와야만 했다.
훈이 잠시 화장실을 간 사이에 스미레는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당신……이 싸워야……할 전장……은 이……곳이 아……니오. 서…… 서울로…… 오, 오제의…… 무덤이 있는……’
도쿄에서 만났던, 죽어가던 남자가 불꽃의 전승자인 자신에게 남겼던 마지막 말이 계속 걸렸던 스미레는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커피를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한 채 계속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리자, 스미레는 고개를 들었다. 눈앞에 나타난 참혹한 풍경에 그녀는 할 말을 잃었다.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사람들로 가득했던 카페는 참혹한 집단 살인현장으로 변해 있었다. 남자, 여자, 어른, 아이할 것 없이 카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목숨을 잃은 채 쓰러져 있었다.
모든 사람이 죽어 있었다.
모든 사람이 죽었다.
홀린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 스미레는 죽은 사람들을 지나쳐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라는 생각이 들 겨를도 없었다. 그저 걷고만 있을 뿐이었다.
카페 문을 가린 커튼을 본 스미레는 흑색 장갑을 낀 손으로 커튼 자락을 잡아 열어젖혔다.
커튼을 열어젖힌 스미레는 눈앞에 피갑칠을 한 채 서 있는 자들을 보았다. 그들은 전부 스미레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쿠사나기 일족이었다.
그들의 눈에는 ‘깊은 원망’만이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원망을 한 몸에 받은 스미레는 고개를 저으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야…… 날 원망하지 마……. 내가 이렇게 되고 싶었던 게 아니잖아.”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원망어린 눈빛에 스미레는 겁을 먹었다. 그녀의 마음 깊숙한 곳에 숨어있던 죄책감도 피어올랐다.
그들의 원망을 견디다 못한 스미레는 뒤로 돌아섰고, 그곳에는 또 다른 모습의 스미레가 서 있었다. 스미레에게 스미레는 너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듯, 크게 일갈했다.
“넌 그들을 저버렸어. 너 때문에 그들이 승리했어.”
“아, 안돼……”
“그들은 널 키워주고 네게 모든 것을 줬는데도 넌 그들을 죽게 내버려뒀어.”
“아니야! 아니라고! 아니야아아아아아!”
머리를 감싸 쥐면서 스미레는 있는 힘을 다해 비명을 질렀다. 괴로운 현실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진실에 애써 눈을 돌리며 그녀는 고개를 저어 외면했다.
“일어나세요.”
누군가의 목소리와 손길에 의해 스미레는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식은 땀으로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걱정스레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훈이었다.
“괜찮아요?”
훈은 진심으로 걱정하는 얼굴로 스미레에게 티슈를 내밀었다. 스미레는 훈이 건네준 티슈로 얼굴에 가득 한 식은땀을 닦으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잠시 졸았네요. 고맙습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죠. 내 일륜도는 어떻게 알아봤죠? 보통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도록 조치를 했는데…….”
“그냥…… 보였다라고 하면 안 될까요?”
“그러기에는 내 검을 숨긴 술수가 꽤 지독한지라…….”
“그럼 저도 하나 묻죠, 어떻게 해서 당신은 반입 금지된 물건을 가지고 비행기에 탈 수 있었던 거죠?”
“영업비밀이라고 하기에는 서로에 대해 너무 알아버린 거 같네요.”
그렇게 말하더니 훈은 품에서 종이뭉텅이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부적이었는데 일반적인 부적과는 차원이 달랐다. 흉내만 내는 부적이 아니라 신비한 기운이 감돌고 있는 진짜 부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스미레는 이 부적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일본 헤이안 시대쯤 결성이 되어 그 후로 천년간 사람을 해치는 혈귀를 사냥했던 전설의 부대 이야기. 그냥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들었던 전래동화, 잔혹한 이야기 정도로만 생각했던 이야기가 사실이었단 말인가?
“설마? 당신…… 귀살대와 무슨 관련이 있는 거죠?”
“나도 삼신기의 일원인 쿠사나기 가의 사람을 만날 거라곤 생각도 못했네요. 그것도 한국에서.”
그제야 두 사람 사이에 흐르던 묘한 긴장감이 사라졌다. 둘은 오늘 초면이었지만, 둘이 속해있는 곳은 과거부터 인연을 맺었기에 긴장감은 사라지고, 동료의식이 싹텄기 때문이었다.
스미레의 가문인 ‘쿠사나기’ 가문은 과거부터 일족 전체가 ‘불꽃’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녀의 선조는 과거 죄인이라고 불린 오제를 봉인하는데 큰 역할을 한 영웅이었고, 그녀의 가문은 선조의 유지를 이어받아 죄인을 감시하는데 그 역할을 다해오고 있었다.
오제의 무덤을 지키는 역할은 쿠사나기 일족 중 ‘불꽃의 전승자’가 맡아왔다.
훈은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어도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원래 일본인으로 본명은 시바 카오루(志葉 薫)였다. 지금 사용하는 이름 ‘훈’은 원래 이름인 카오루를 그대로 읽은 것이다.
그는 과거 일본에 나타난 ‘오니’라는 괴수를 퇴치하기 위해 구성된 ‘귀살대’의 마지막 생존자로, 귀살대에서 사용했던 ‘전집중 호흡’이라는 고유의 무예를 사용하며, 귀살대의 무기인 일륜도를 휘두르는 검사다.
서로에 대한 경계심을 푼 훈과 스미레는 적당한 자신의 과거와 각자 속해있는 가문과 단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눈 건 딱 여기까지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비밀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또 다른 비밀까지 전부 공개하기에는 쿠사나기 가문과 귀살대가 가진 신뢰만으로는 부족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귀살대와 쿠사나기 가문 이야기를 하다가 훈은 스미레에게 물었다.
“근데 아까 왜 비명을 지르신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가문과 귀살대 이야기하다가 그걸 묻는 걸 잊었네요.”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난 괜찮아요.”
“음…… 내가 알고 있는 ‘괜찮다’라는 말의 뜻을 다르게 알고 있는 거 같네요. 편하게 이야기해보세요. 이래 뵈도 전 의사입니다.”
훈의 말에 스미레는 그저 웃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신의 비밀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굳이 악몽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는 관광차 방문한 건가요?”
“다른 일이 있어요. 누굴 좀 찾아야하거든요.”
“그래요? 한국인이 아니면 찾기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아까 전화를 하려고 한 거예요. 가문에서 꽤 능력있는 탐정사무소를 추천해줬거든요.”
쿠사나기 일족의 사람에게서 서울로 가라는 이야기를 들은 스미레는 바로 한국행을 결정지었다. 그녀가 본래 무슨 일을 하는지 알고 있었던, 일족의 수뇌부들은 스미레의 결정에 우려를 표했지만, 일족의 전사가 목숨을 걸고 전달한 정보이니 그만한 가치가 있을 거라는 판단 하에 그녀의 한국행을 지원해줬다.
다만, 한국을 잘 못랐고, 한국어도 몹시 서툴렀기 때문에 스미레는 자신의 일을 대신처리해줄 사립탑정을 고용하기로 했다.
한국에 있는 수많은 탐정사무소 가운데, 보수는 매우 비싸지만 그만큼 실력이 확실한 탐정사무소를 철저하게 물색했고, 그 결과 고르게 된 곳이 바로 LTK 탐정사무소였다.
탐정사무소를 추천해줬다는 말에 훈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대꾸했다.
“탐정사무소요? 저도 꽤 괜찮은 곳을 아는데…….”
“시바 씨가 알고 있는 곳이 혹시 LTK 탐정사무소인가요?”
LTK 탐정사무소를 머릿속에 떠올렸던 훈은 스미레가 같은 이름을 말하자 깜짝 놀랐다.
“어? 맞아요. 그럼 거기까지 동행하실래요? 제가 사는 곳이 그 탐정사무소가 있는 곳이거든요.”
“그래요? 고맙습니다.”
스미레는 훈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차를 다 마시고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향하는 교통편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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