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engers - Legacy of Legend 제5부 DarkWing: Origin 제4편 의지 (4) 팬픽, FAN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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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engers - Legacy of Legend











제5부 DarkWing: Origin

제4편 의지 (4)


서울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많은 조치를 해둔 도시 중 하나였다.
치안이 꽤 좋은 편이고, 총기규제가 확실한 국가였기 때문에 헐리우드 영화와 같이 중화기로 무장한 강도들이 은행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일은 드물었지만, 어디까지나 드물었다 뿐이지 없는 일이 아니었다.
특히 오늘, 서울은 그다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오늘도 평상시처럼 활기로 가득찬 도시여야 했지만 서울시민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라디오와 TV등 방송매체에서 하는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긴장에 빠뜨린 것일까?


시민들의 관심이 모아진 곳은 서울 시내에 있는 한 박물관이었다. 그곳엔 고대시절부터 존재해온 여러 문화재들이 전부 모여 있는 곳이라 학생들의 야외 수업 장소 중 하나로 많이 쓰인 곳이었는데, 여기에 중화기로 무장한 이들이 침입했다.
두 달이나 세 달에 한 번씩 이 박물관에서는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을 위해 가장 큰 중앙홀에 특별 전시회를 열곤 했다. 이번에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장군인 이순신 장군의 특별전이 열렸기에 많은 학생들이 교사의 인솔에 따라 이곳을 방문했다.
정부에서 거금을 들여 찾은 이순신 장군의 각종 유물들이 처음 공개되는 전시회여서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관심도 많이 쏠려 있었다.

그렇기에 중화기로 무장한 10여명의 괴한들은 이날 박물관을 찾은 관람객 50여명을 인질로 잡는데 성공했다. 성공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는게, 이들은 정문으로 들어가면서 박물관 입구에 있는 경비들을 모조리 살해했고,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차없이 죽였다.
박물관 앞에는 무장한 경찰들과 수많은 관계자, 그리고 특종의 냄새를 맡고 달려온 기자들로 북적였다. 중화기로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에 맞서 경찰은 특수진압반까지 모두 가동하는 등 총력전으로 대응하고 있었다.

일촉즉발.

이 단어만큼이나 지금 은행 안팎의 상황을 잘 묘사한 단어는 없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처럼, 박물관은 묘한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관람객들을 인질로 잡은 테러리스트들에게 경찰은 요구 조건을 여러 차례 물었지만 그들은 대꾸하지 않았다. 관람객을 인질로 잡고 몸값을 요구하지 않은 테러리스트는 매우매우 위험한 존재였기에 경찰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박물관 안으로 진입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고 자동소총 등 중화기를 든 테러리스트들은 관람객들을 인질로 잡아둔 중앙홀과 홀 주변에 퍼져있었다. 중앙홀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딱 2개였는데, 입구 밖에 보초로 한 명씩 세워뒀고, 나머지는 전부 중앙홀 안에서 인질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중앙홀로 들어가는 남쪽 출입구에서 자동소총을 들고 있던 남자의 머리 위로 누군가 날아들었다. 그는 순식간에 남자의 손에서 무기를 빼앗은 뒤, 그의 양손을 결박했다.
무장한 건장한 남자 하나를 순식간에 제압한 이는 붉은 안광이 매서운 마스크를 쓰고, 두꺼운 프로텍터를 입은 사람이었다. 그는 제압한 남자의 목에 검을 들이댔다.

“너흰 누구냐?”

“……대답할 거 같아?”

“아니, 안할 거 같아. 그냥 한 번 물어본 거야.”

“뭐?”

“네 놈들이 그레이 팬텀인 건 알고 있어. 혹시나 해서 물어봤는데 대답 안하는 거라면 됐어.”

“뭐? 자, 잠깐!”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괴한이 들고 있는 검이 아닌 다른 걸로, 테러리스트의 목을 찔렀다. 마스크의 손에 들린 건 작은 주사기였다. 목에 주사를 맞은 테러리스트는 몇 번 괴로워하더니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순식간에 사람 하나를 기절시킨 붉은 안광의 마스크는 인질들과 괴한들이 함께 있는 중앙홀을 보곤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하면서 검을 고쳐 쥐었다.
중앙홀 안에는 인질로 잡힌 관람객들과 이들을 붙잡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있었다. 테러리스트들 중 리더로 보이는 듯한 사람이 인질들 앞으로 다가오더니 들고 있던 서류가방을 열어 그 안에 든 것을 보여줬다.
서류가방 안에 든 것이 폭탄이라는 건 관련 지식이 없어도 쉽게 알 수 있었다. 뭔가 복잡하게 꼬아놓은 전선들과 괴이한 물체, 그리고 그들 중앙에 자리 잡은 3라는 숫자는 3분 뒤에 폭발하는 시한폭탄이라는 걸 그들에게 잘 알려줬다.

“꺄아아아아악!”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이미 작동하고 있다는 걸 안 관람객들은 모두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테러리스트들은 허공에 대고 총을 쏘며 이들의 입을 막았다.
관람객들이 두려운 눈으로 자신을 보자 테러리스트들의 리더, 길을 지나다니다가 볼 법한 평범한 중년 남자인 그는 뭔가 초점을 잃은 듯한 눈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이것만이 인류의 희망이다. 현대사회는 몰락하고, 암흑시대로 돌아가 신을 경외하며 사는 거지.”

자신만의 생각에 빠져,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타인의 목숨까지 없애려고 하는 미련하고, 무식한 테러가 이곳에서 벌어지려고 하고 있었다. 관람객 중에는 아직 어린 학생들도 있었지만 혼자만의 아집에 빠진 이들에겐 그마저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했다. 남은 건 신의 뜻에 맡긴다’는 역겹기 그지없는, 마치 순교자와 같은 표정을 지으며 리더가 하늘을 바라봤을, 그때였다.

중앙홀의 문이 박살나면서 누군가 그 안으로 들어왔다. 문이 부서지면서 울린 충격파에 테러리스트의 리더는 들고 있던 가방을 놓쳤고, 테러리스트들 모두 문을 부수고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
그 짧은 순간, 그 순간에 문을 부수고 들어온 붉은 안광의 마스크는 중앙홀 내의 상황을 파악했다. 가장 위험한 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의 위치, 그리고 인질들의 있는 곳을 확인했고, 혹시 모를 변수인 바닥에 막 떨어지는 서류가방도 위치를 파악했다. 짧은 순간에 중앙홀의 상황을 파악한 붉은 안광의 마스크는 땅을 박차면서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테러리스트의 목을 쳐 쓰러뜨린 마스크는 그 옆에 있는 테러리스트를 잡아 총을 빼앗은 뒤, 벽에 집어던졌다. 또 다른 테러리스트가 자신을 향해 총을 쏘려고 하자 아까 뺏을 총을 쏘아 그의 어깨를 맞춰 쓰러뜨렸고, 남은 테러리스트들은 빼앗은 총으로 전부 무력화시켰다.
떨어뜨린 서류가방을 집어드려는 리더에게 다가간 마스크는 개머리판으로 그의 머리를 내리친 뒤, 가방을 빼앗았다. 가방 안에 폭탄이 장치됐고, 이제 남은 시간이 1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안 마스크는 입술을 깨물었다.

“빌어먹을 테러리스트들!”

불평만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마스크는 허리춤에서 접착식 소형 폭탄을 꺼내 천장을 향해 던졌다. 천장에 붙은 소형 폭탄이 폭발해 구멍이 뚫리자 마스크는 갈고리총으로 천장에 로프를 연결해 서둘러 중앙홀에서 벗어났다.
중앙홀에서 벗어난 마스크는 몇 차례 소형 폭탄과 갈고리총으로 천장을 부수고 부숴 박물관 지붕 바로 밑에까지 도착하는데 성공했다. 가방 속 폭탄이 이제 10초도 남지 않을 걸 확인한 마스크는 지붕에 뚫려있는 창문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가방을 던졌다.
서류가방이 공중에서 폭발한 걸 확인한 마스크는 바로 중앙홀로 돌아갔다. 테러리스트들을 때려눕히긴 했지만 입구에 있던 보초처럼 죽인 게 아니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었다.

중앙홀로 돌아간 마스크는 테러리스트 리더가 권총을 꺼내 인질들을 쏘려는 걸 보곤 아까 보초를 위협할 때 쓴 단도를 던져 그의 팔에 꽂아버렸다.

“으아아아악!”

리더가 팔을 잡고 비명을 지르자 마스크는 그에게 달려가 체중을 실은 발차기를 날려 그대로 바닥에 때려눕혔다. 테러리스트들을 모조리 제압한 마스크는 리더가 쓰던 권총을 집어들곤 인질들에게 다가갔다. 인질들은 괴이한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에게도 두려움을 느끼는 듯 했다.
마스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권총에서 탄창을 뺀 뒤, 슬레이트를 젖혀서 장전된 총알까지 모두 빼내 권총의 총알을 모두 제거했다. 그래도 인질들에게서 두려운 빛이 사라지지 않자, 마스크는 아까 자신이 부수고 들어온 문을 가리키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가시오.”

“……예?”

“어서 나가요.”

인질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이 자를 믿을 수 있는 건가? 방금 전까지 지옥문턱까지 갔다가 온 사람들이니 테러리스트 뿐만 아니라 이들을 모조리 때려눕힌 마스크도 믿을 수 없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스크가 문을 가리키기만 하고 어떤 행동도 하지 않자, 사람들 중 한 명이 먼저 일어나 문 쪽으로 내달렸다. 그가 무사히 문에 도착해 사라지는 걸 본 다른 사람들도 일제히 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인질들이 모두 빠져나가는 걸 본 마스크는 아까 때려눕힌 리더에게 가려고 했는데, 누군가 그의 바지자락을 잡아당졌다. 마스크가 내려다보니 이제 막 5~6살 정도 되어보이는 어린 소녀였다. 괴이한 마스크를 쓰고 있는 자가 무섭지 않은지 소녀는 방긋 웃어보이더니 뭔가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건 막대사탕이었다.
갑자기 내밀어진 막대사탕을 보기만 할 뿐 받지 않자, 소녀는 마스크에게 살짝 심통을 부렸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얼른 받으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마스크가 떨떠름한 손으로 사탕을 받아들자 소녀는 그제야 다시 웃어보였다.

“고마워요, 아저씨.”

그날 자신의 비밀기지로 돌아온 태연은 마스크를 벗고 한 소녀가 자신에게 준 막대사탕을 한참동안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왜 내게 이걸 준 걸까? 그리고 고맙다고 한 의미는 무엇일까?

오늘 태연은 그레이 팬텀의 부하들을 잡기 위해 그곳에 간 거였다. 그들을 제압하는 와중에 인질로 잡힌 사람들은 운 좋게 풀려날 수 있었다. 그건 태연이 의도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순전히 우연이었다.

폭탄을 다른 곳으로 빼낸 것도, 인질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몸만 빼내면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레이 팬텀을 추적하기 위해선 그들의 살아있는 부하가 필요했다. 폭탄이 터지면 살아있는 부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폭탄을 처리한 것이었다.

순전히 그레이 팬텀에게 복수하고 싶다는 자신의 이기심 때문에 움직인 건데 왜 감사의 인사를 받게 된 걸까?

예전, 오빠와 했던 이야기…… 구명보트와 5명의 사람이 생각났다. 그때 3명밖에 탈 수 없다면 2명은 철저하게 배제하겠다는 게 태연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태연의 대답에 오빠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왜 그랬을까?

오늘 만약…… 오빠가 말했던 그 상황이었다면…… 아니, 그 상황이랑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오늘 태연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폭탄을 두고 그레이 팬텀의 부하 하나만 데리고 박물관 창문을 깨고 몸을 피하는 거였다. 천장을 부수고 갈고리총으로 천장을 타고 올라가 폭탄을 처리하는 건 전혀 효율적이지 못했다.

하지만 태연은 오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여기에 계시면 제가 모를 줄 알았습니까?”

비밀기지가 환하게 밝혀지면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태연이 보니 비밀기지 천장 일부로 되어있는 엘리베이터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는데, 거기에는 집사 설현이 타고 있었다.
회색으로 가득한 직사각형의 공간, 서울 변두리에 있는 강태연 일가의 사유지 지하에 만들어진 비밀기지에서 설현은 기가 막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한영이 구상하고 비밀리에 만든 다크 케이브의 축소판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택 지하의 거대한 동굴을 개조해 만든 다크 케이브의 위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필요한 물건만 갖춰놓은 실용성 면에서는 다크 케이브를 능가하는 부분도 있었다.
회색 공간 중앙에는 각종 최신식 컴퓨터가 있었고, 공간 한 쪽에는 흑색의 바이크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방금 바이크를 타고 출동하고 왔는지, 바닥에서부터 솟아올라온 케이스 안에는 과거 한영이 입었던 다크윙 슈트와 거의 비슷한 흑색 슈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조금 다른 것은 비살상용 무기를 선호했던 한영과 달리 태연의 슈트 옆에는 각종 총기와 도검류들이 자리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설현은 가지고 온 신문을 펼치더니 헤드라인 기사를 태연에게 보여줬다. 신문 헤드라인은 ‘다크윙, 박물관 테러 막았다’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회장님께선 아가씨의 행복만을 비셨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짓을 하신 겁니까?”

“……오빠의 유지를 잇는 것뿐이야.”

“이으시려면 제대로 이으시던가요. 다크윙이 총과 검을 쓰다뇨! 회장님께선 아무리 악인이라고 해도 목숨을 빼앗지 않으셨습니다!”

“그게 물러 터졌다는 거야! 어차피 그놈들은 살려놔봤자 똑같은 짓을 저지를 놈들이라고! 순결한 정의? 불살? 그런 건 다크윙의 페널티일 뿐이야!”

“그래도 지켜야할 선이 있는 겁니다! 회장님께선 그 선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어요!”

그때였다. 태연이 가져다놓은 컴퓨터가 경찰 무전을 하나 잡아낸 것이다. 경찰 무전 내용은 중앙은행에 은행강도가 들어 직원들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설현과 더 말싸움하기 싫었는지 태연은 그녀에게 돌아서더니 흑색 슈트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슈트에 손을 대려고 하자 설현이 태연의 앞을 막아섰다.

“멈추세요, 아가씨! 지금 어디로 가려는 겁니까?”

“너도 들었잖아. 은행강도가 나타났잖아.”

“그래서 그걸 막으러 가시겠다는 겁니까?”

“너도, 오빠도 내가 다크윙이 되는 걸 반대했잖아!”

“아가씨는 다크윙이 아닙니다. 그걸 전 절대 용납할 수 없어요!”

자신이 다크윙이라는 사실을 설현이 인정하려하지 않자 태연은 심한 분노와 모욕감을 느꼈다.

“내가 뭘 어떻다고?”

“아가씨는 회장님과 같은 경험 많은 자경단원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은 많은 재산을 가진, 지나치게 큰 분노를 품었을 뿐입니다. 아가씨는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있지 않아요. 전 당신이 이렇게 끝나는 걸 바라지 않습니다.”

“설현! 날 볼 때 누가 보여? 자기 오빠인지도 모르고 가면 쓴 자경단을 죽을 때까지 두들겨 패던 살인병기? 오빠에게 검은 망토를 달라고 조르던 소녀? 네가 매일 밤 오빠와의 추억을 되새기고 있을 동안 나는 계속해서 밖에 있었어! 오빠가 하던 것처럼 무고한 사람들을 지켜주는 유일한 방벽으로서 말이야!”

그 말은 사실이었다. 혼자만의 다크윙이 된 이후, 태연은 가장 먼저 그레이 팬텀의 똘마니들부터 찾아다녔다. 그들을 추적해서 모조리 죽여야만 가슴 속 깊이 쌓인 분노가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레이 팬텀을 쫓는 와중에 태연의 눈에 들어온 것은 범죄에 노출돼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그들을 외면할 수 있었겠지만 태연은 그러지 못했다.

그레이 팬텀에 대한 복수만을 위해 다크윙이 되기로 했다면 그런 사람들쯤은 모른 척 했어야했지만…… 어느샌가 잊어버렸지만, 그렇다고 해서 잃어버린 게 아닌 태연의 ‘양심’이 계속해서 속삭였다.

저 고통받는 사람들을, 무고한 사람들을 그냥 내버려 둘 거냐고……

처음에는 순전히 동정심에서 사람들을 구해줬다. 밤늦은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탓하면서……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소녀의 웃음과 그녀가 준 막대사탕이 태연의 뇌리에 떠올랐다.

“그러니 당장 비켜! 이제부터 진짜 다크윙은 바로 나야!”

그 순간 태연의 얼굴 바로 앞에 총구가 겨눠졌다. 어느샌가 슈트 옆에 있던 총기를 꺼내든 설현이 태연에게 그 차가운 총구를 겨눈 것이다.

​총구만큼이나 싸늘한 눈빛을 한 설현은 태연에게 조용히 말했다.

“정말 다크윙이 되시려는 겁니까? 그레이 팬텀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눈이 먼 게 아니고요?”

“……”

“그렇다면 한 가지 묻겠습니다. 그때 회장님께서 말씀하신 5명의 사람과 구명보트를 기억하실 겁니다. 지금도 3명을 구하기 위해 2명을 죽일 겁니까?”

“지금도 3명을 구해야한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 하지만……”

“하지만?”

잠시 망설이던, 아니 조금 더 고민하던 태연은 어렵사리 대답을 꺼냈다.

“예전 나였다면 3명을 구하기 위해 2명을 죽인다고 했을 거야. 그건 지금도 그래. 하지만 다크윙은 그래선 안돼. 오빠가 다크윙이 된 건, 나를 구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으니까.”

“……”

태연은 슈트 옆에 보관해둔 검을 꺼내들었다. 그 검은 롱소드 길이 정도의 검으로 손잡이 부분과 검집 모두 흑색으로 물들어있었다. 검을 뽑아든 태연은 찬연하게 빛나는 검신을 바라보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3명만 구한다면 다른 2명은 틀림없이 절망을 맛볼 거야. 하지만 다크윙은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 바로 영웅이지. 그렇다면 다크윙은, 오빠였다면 어떻게 했을까? 되든 안 되든 5명을 전부 보트에 태울 거야. 모두가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기 위해서.”

“……”

“그걸로 5명 모두 살 수 있다는 건 보장되지 않고, 분명 다크윙의 어리석음을 탓하는 나같은 사람도 있겠지. 하지만 오빠는, 아니 다크윙은 그걸 넘어설 거야. 그걸 넘어서는 사람이 비로소 영웅이 되니까.”

대답이 끝나는 순간, 태연은 검을 반으로 부러뜨렸다. 그리고 검이 부러지면서 상처를 입은 손에는 붉은 피가 흘렀다.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두 동강이 난 검을 쥔 채 태연은 설현에게 선언했다.

“난 그레이 팬텀의 살인병기 강태연이 아니야. 난…… 다크윙이다.”

태연의 대답을 들은 설현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뭔가 안타깝지만 그래도 대견하다는 느낌이랄까? 아주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설현은 태연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태연이 받아들자 그건 작은 열쇠였다.

“저택에 있는 모든 방을 조사하셨죠? 그 중 무슨 수를 써도 열리지 않는 방이 있었을 겁니다. 그 방에 다크윙의 모든 것이 있습니다.”

“왜 이걸……”

“회장님께선 아가씨께 다크윙을 물려주는 걸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게 맹세까지 시키셨죠. 하지만, 조건을 하나 걸었습니다.”

“조건?”

“아가씨께서 다크윙이 짊어져야할 짐을 제대로 깨달았다면 이 열쇠를 주라고 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다크윙입니다. 아가씨, 아니…… 주인님.”

설현이 허리를 숙여 인사하자 태연은 자신의 손에 들린 작은 열쇠를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이 작은 열쇠는, 지금은 죽고 없는 오빠의 목소리를 전해주는 것만 같았다.

“정답이다, 태연아.”


슈트를 모두 입고, 망토를 두른 태연은 다크윙의 헬멧을 들어 머리에 썼다. 태연의 머리에 씌어진 헬멧은 조금씩 변형을 일으키더니 그녀의 머리에 꼭 맞게 맞춰졌다.
다크윙 슈트를 다 갖춰 입은 태연은 탈 것들이 있는 공간으로 걸어갔다. 아이린이 수리하겠다고 한 다크 아머를 지나쳐, 육중한 체구의 바이크와 위에서 보면 십자가 모양을 한 소형 비행기 쪽으로 걸어갔다.
흑색으로 온 몸을 물들인 바이크, 피쉬 테일은 살라딘이 타고 간 세라자드와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다만 조금 다른 것은 세련된 외관의 세라자드와 달리, 이 바이크는 앞바퀴 양 옆에 가늘고 긴 캐논들을 달고 있었다.
전신을 검은색으로 칠한 소형 비행기, 소드 브레이커는 위에서보면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기수 부분에는 기다란 캐논이 달려 있었다.전신을 검은색으로 칠한 소형 비행기, 소드 브레이커는 위에서보면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기수 부분에는 기다란 캐논이 달려 있었다.
소드 브레이커와 피쉬 테일을 두고 잠시 고민을 하던 다크윙은 소드 브레이커 쪽으로 걸어가 조종석 밑에 있는 좌석에 올라탔다. 소드 브레이커의 좌석은 오토바이처럼 생겼는데, 다크윙이 올라타자 좌석은 소드 브레이커 안으로 들어갔다.

소드 브레이커의 조종간을 쥔 다크윙은 시동을 걸려다 잠시 손을 멈추곤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를 정의하는 것은, 내가 하고 있는 생각이 아니라, 내가 하는 행동이다.”

오빠가 늘 입버릇처럼 하던 말을 중얼거린 다크윙은 소드 브레이커의 엔진을 가동시켰다.

소드 브레이커의 엔진이 굉음을 내면서 비행기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생명이 돌면서 조금씩 공중으로 떠오른 소드 브레이커는 다크 케이브 내에 마련된 전용 출구를 통해 서울의 어두운 밤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투 비 컨티뉴드~